국민연금이 지난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이후 유럽 지역 인프라 시설에 대한 첫 대규모 투자에 나선다. 브렉시트 충격으로 영국을 포함한 유럽 지역 자산에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지금이 저가에 유럽 인프라 시설을 매수할 수 있는 시점이라고 판단해 ‘역발상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최근 3년간 국민연금의 해외 인프라 투자 수익률(벤치마크 대비)이 해외 대체투자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거둔 점도 고려됐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최근 글로벌 운용사 맥쿼리가 총 25억유로(3조원) 규모로 모집하고 있는 유럽인프라펀드(MEIF5)에 약 2억5,000만유로(3,000억원)를 출자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의 투자액은 맥쿼리가 국내 기관에서 투자받은 금액(6,000억원)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통 큰 베팅이다. 나머지 3,000억원은 군인공제회·과학기술공제회·노란우산공제회 등이 출자할 예정이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이번 투자로 연평균 7~9%대 수익률을 기대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브렉시트 충격에도 유럽 지역 투자에 나서기로 한 것은 지금이 유럽의 핵심 인프라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로 영국 등 유럽 지역의 주식·채권·부동산 등 자산 가치 하락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노후화한 유럽 지역의 인프라 시설은 투자 수요가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유럽연합(EU)은 종잣돈 210억유로를 들여 역내 인프라 건설 사업에 투자하는 경기 부양책(융커 플랜)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이 출자한 MEIF5는 유틸리티·통신·교통 인프라 등 유럽 지역의 핵심 인프라 자산에 주로 투자한다. 투자 집행 기간 4년을 포함해 총 운용 기간이 12년으로 중장기 투자를 주로 하는 국민연금에 매력적이다. 앞서 2013년 맥쿼리가 결성한 4호펀드(MEIF4)의 경우 독일 가스회사(OGE), 스페인·포르투갈의 에너지 기업(Viesgo), 영국 민영공항(AGS Airport) 등에 투자해 15%의 연간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번 거래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맥쿼리 측이 제시한 펀드 운용계획서를 보면 경기 변동의 민감도가 낮고 예측 가능한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핵심 인프라 자산에 주로 투자한다고 나와 있다”며 “실제로 과거 유럽 경기가 좋지 않을 때에도 인프라 자산의 수익률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충격 여파로 영국 파운드화와 유로화가 떨어질 경우 핵심 인프라 자산을 싼값에 편입할 수도 있다. 맥쿼리는 향후 투자회수(exit) 시기 도래 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제3자 매각이나 기업공개(IPO) 등으로 투자자의 자금 회수를 도울 예정이다.
국민연금의 해외 인프라 투자는 저성장·저금리 시대에도 벤치마크 대비 높은 수익률로 기금운용 성과를 높이는 데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해외 인프라 투자 수익률은 13.65%로 시장 수익률(5.58%)을 8%포인트 웃돌았다. 이는 같은 기간 해외 부동산 수익률이 벤치마크 대비 1.38%, 해외 사모펀드 수익률이 4.37% 하락한 것과 대비된다. 2013년부터 최근 3년간 시장 대비 수익률 역시 해외 인프라(7.27%)가 해외 부동산(3.88%)과 사모펀드(1.30%)를 앞질렀다.
연기금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 현재 전체 운용자산 대비 7%인 해외 대체투자 비중을 오는 2021년까지 10%까지 늘리기로 한 만큼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해외 인프라 투자 금액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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