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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롯데] 손발 묶인 컨트롤타워·辛회장 복심 사망...롯데 경영마비 심화

오너일가 비자금 수사에 의사결정 구조 사실상 붕괴

액시올 인수·호텔롯데 IPO 등 핵심사업 줄줄이 좌초

4분기 경영전략 수립도 어려워...계열사 실적 먹구름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이 지난 26일 스스로 목을 매 숨지면서 롯데 경영 전반에도 심각한 차질이 예상된다.

신동빈 롯데 회장에게 들어가는 보고는 모두 이 부회장을 거칠 정도로 핵심 정책 결정에 이 부회장의 영향력이 상당했다는 게 롯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롯데의 한 관계자는 “그룹의 성장을 최전선에서 이끌었고 롯데의 DNA를 가장 잘 이해했던 분”이라며 “신 회장 역시 인수합병(M&A) 같은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이 부회장과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눈 뒤 최종 결심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제2롯데월드 건축 사업을 이끌던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가 6월 구속된 데 이어 신 회장의 ‘가신(家臣)’으로 꼽히는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과 허수영 롯데케미칼 대표 등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 나가 조사를 받고 있어 그룹의 의사 결정 구조가 사실상 붕괴상태라 볼 수 있다.

빠르고 담대한 결정으로 몸집을 불려 왔던 롯데의 ‘속도 경영’에 급제동이 걸리게 됐다는 것이다.

◇롯데, 분기별 경영전략 수립도 어렵다=6월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진 후 롯데 경영은 석 달째 사실상 ‘올스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20여명도 출국금지로 발이 묶여 정상적인 회사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게 롯데 측 하소연이다. 롯데 내부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검찰 조사를 받은 사람이 300여명, 조사를 받은 횟수를 모두 더하면 400~500차례는 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롯데의 핵심 사업들도 줄줄이 좌초되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추진했던 미국 화학기업 액시올에 대한 M&A가 검찰 수사 직후 무산됐고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도 무기한 연기됐다.

한국 롯데의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를 상장해 일본계 주주 지분을 낮추고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게 롯데 지배구조 개선방안의 핵심 대책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내년 실행도 장담이 어려운 상황이다.

롯데 내부에서는 올 4·4분기 경영전략조차 제대로 짜기 힘들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계열사 별 투자 우선순위 등을 정할 때 일일이 CEO들의 목소리를 듣고 ‘조정자’ 역할을 해왔는데 앞으로 이런 일을 해줄 만한 사람이 없어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27일 오전 고 이인원 부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신 회장의 뒷편에 완공을 앞둔 롯데월드타워가 보인다. /사진공동취재단


◇하반기 실적 먹구름=엎친 데 덮친 격으로 2·4분기까지 선방했던 주요 계열사 실적이 하반기 이후 하락세를 보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계열사 중 최대실적을 낸 롯데케미칼의 경우 상반기 영업이익이 1조1,675억원에 달해 반기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승승장구했으나 시황 악화 등에 따라 실적이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유화업계의 한 관계자는 “석유화학 기업은 업황에 따라 대규모 보수 일정 등을 잘 조율해야 더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며 “지금과 같은 경영공백 상태에서는 책임을 질 수 있는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롯데그룹의 전통적 핵심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유통은 이미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롯데쇼핑의 경우 올 2·4분기 1,71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전년보다 15.4% 낮은 성적을 기록했다. 매출은 제자리걸음하고 있는데 뚜렷한 성장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시각이 많다. 그나마 해외시장 공략이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지만 그룹 안팎이 뒤숭숭해 공격 경영이 어렵다.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제2롯데월드 개장도 오너 일가에 수사의 여파로 연내에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더불어 재계에서는 롯데그룹의 성장을 이끌어온 가신 그룹의 세대교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아직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롯데 주요 수뇌부가 비자금 조성 의혹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어 일선 후퇴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롯데만의 경영 색깔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표적인 내수 업종을 맡고 있는 롯데는 국내 고용과 투자에 미치는 영향이 삼성그룹에 못지않게 크다”며 “비자금 조사가 경영상 차질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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