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 북촌 삼청로에 외국인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한복 체험으로 고궁 관람을 즐기는 중국과 일본의 관광객뿐 아니다. 어깨에 맨 에코백에 작가와 전시자료를 한가득 담은 외신 기자들을 비롯한 해외 미술계 관계자들이 자주 보인다. 이들이 한국을 찾은 일차적 이유는 비엔날레다. 아시아 최고의 비엔날레로 자리매김한 광주비엔날레, 이와 어깨를 겨루는 부산비엔날레, 미디어아트로 특화한 세마(SeMA)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이 잇달아 개막하면서 현대미술의 진수성찬이 차려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내외 미술계 인사들의 이목이 쏠리고 대중의 관심도 커진 것을 노려 주요 화랑과 미술관들은 각자 최고의 작가들을 내세웠다. 이른바 미술계 ‘별들의 전쟁’이다.
최고의 스타는 국제갤러리에서 지난달 31일 개인전을 개막한 인도 출신의 영국작가 아니쉬 카푸어다. 매끈하고 오목한 금속 설치작품 하나만으로 세상을 뒤집어 보게 만드는 작가 카푸어는 1990년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했고 이듬해 ‘터너상’을 수상했으며 베르사유 궁전 전시 및 런던올림픽 조형작품 등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이번 전시에는 쇳덩이에 힘을 가해 살짝 비튼 형태의 신작 ‘비정형(Non-object)’을 선보여 해외 취재진까지 국내로 끌어들였다. 일명 ‘트위스트’인 이 작품은 정제된 기하학적 형태와 힘의 절제가 균형을 이루며, 거울 같은 작품 앞에서는 비뚤어진 자신을 성찰할 기회도 가질 수 있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옛 공간사옥을 미술관으로 바꿔놓은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는 ‘관계 미학’의 대표 작가로 손꼽히는 리암 길릭, 영화·문학·건축 등을 다채롭게 시각화하는 도미니크 곤잘레즈-포에스터, 유럽 현대미술의 차세대 유망작가인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의 3인전이 열리고 있다. 작가들의 명성도 높지만 유럽의 현대미술과 한국의 근대건축이 이루는 조화가 탁월하다.
한국의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작가 김구림(아라리오갤러리)과 이건용(갤러리현대)의 전시도 나란히 막을 올렸다. 이건용은 전성기인 1970년대 작품을 집중적으로 선보였고, 김구림은 사회에 대한 날 선 감각으로 최근작들을 내놓았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으나 추상표현주의로 강렬한 자기 색을 구축한 요절화가 최욱경(국제갤러리), 2차원 평면에서 3차원을 실험했던 작고작가 신성희(현대화랑)의 전시도 챙겨봐야 한다.
학고재갤러리의 경우 본관에서 민중미술의 대표작가인 신학철, 중국 현대미술의 ‘4대 천왕’ 중 하나인 팡리준의 2인전을 열었고, 신관에는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였던 이용백의 학고재갤러리 개인전을 마련했다. 리뉴얼 공사 후 재개관한 아트선재센터에서 볼 수 있는 이불·정서영·김소라·샌정 등의 작품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에 선정된 김을·백승우·함경아·믹스라이스의 전시도 관람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참여한 배영환 작가의 개인전(PKM갤러리)도 볼 만하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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