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이 눈 앞에 다가왔지만 혼란은 여전하다. 적게는 400만 명 많게는 2,000만 명이 영향을 받을 정도로 파급효과가 큰 법이지만, 사례별로 법이 어떻게 적용될 지에 대해 제대로 된 해석이 없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사례별로 발표한 메뉴얼조차 내용이 바뀌는 등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권익위의 메뉴얼은 유권해석일 뿐이어서 최종적으로는 법원의 판결을 확인해야 한다.
●◇3·5·10에 빠져 법 취지는 뒷전으로= 김영란법이 만들어진 계기는 스폰서·벤츠 검사 사건이다. 고위공직자와 오랫동안 금품으로 관계를 맺고 부정청탁을 하는 관행을 고치려는 데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논란은 3만원(식사)·5만원(선물)·10만원(경조사비)이라는 가액 범위를 둘러싸고 나타난다. 김영란 법을 촉발한 검사는 김영란 법 때문에 더욱 막강해지게 됐고 처벌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권익위 관계자는 “3·5·10보다 중요한 것은 부정청탁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건가인데 그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더불어 변종 형태가 발생할 공산도 크다. 예를 들어 공무원, 기자와 직무 관련성 없는 사업가나 변호사 등이 만나서 사업가가 100만 원 이하로 밥값을 낸다면 100만 원 이하는 막을 수 없다. 공무원이 민간 기업 관계자에게 자신의 자녀를 위해 인사 청탁하는 것은 김영란 법이 규제하지 못한다. 민간에서 음성적인 로비스트가 활개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엉뚱하게 사찰 논란을 낳는다는 우려도 있다. 국공립 교원의 외부 강연·강의·평가 등 모든 회의형태에 대해 1달 3회 이상, 총 6시간 이상인 경우 기관장으로부터 승인받도록 한 점이 대표적이다. 두 번 이상 청탁을 받을 때는 홈페이지에 이를 게시해야 한다. 실제로 최근 경주 지역 지진과 관련해 정부 출연 연구소의 연구인력들은 김영란법을 이유로 외부 활동을 일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외부에 자문을 맡아주던 교수들도 교수실에 찾아오는 것조차 손사래를 치고 있다.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영란법의 취지는 소수 엘리트가 독점한 정보를 소통시키려는 것인데 거꾸로 정보가 단절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대상자 간 형평성 논란=동일한 사안이라도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형평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예가 공무원법과 근로기준법 사례다. 원래 김영란 법은 공무원만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공무원법이 규정한 공무원만 법을 적용했다. 정부부처 등에서 일하는 기간제나 무기계약직 근로자는 공무원법이 규정한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제외된 것이다. 그러나 민간영역의 사립학교나 언론사, 학교법인이 세운 병원 등의 임직원이 대상에 포함되면서 민간에서는 근로계약서를 썼다면 비정규직도 대상자가 됐다. 공직자보다 민간이 더욱 엄격한 법 적용을 받는 것이다. 권익위는 기간제나 무기계약직 공무원은 공무원 행동강령을 김영란법 수준으로 개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형사처벌 규정이 있는 김영란법과 행동강령은 차이가 크다.
●사실상 ‘을’의 위치에 있더라도 ‘갑’을 제치고 김영란법을 적용받기도 한다. 사립대학의 명예교수는 사학연금을 받더라도 고등교육법에서 교원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어 김영란법 적용에서 제외된다. 그렇지만 비정규직에 가까운 시간강사는 포함된다. 심지어 고등교육법에 따라 대학 등록금 심의위원회에 당연직으로 포함되는 대학생도 김영란법 대상이다. 기존언론보다 영향력이 큰 포털 사이트는 언론중재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김영란법에서 빠졌다.
●교사는 학생의 성적을 평가한다는 이유 때문에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한 3·5·10규정도 적용받지 못한다. 단돈 10원도 학부모로부터 받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학부모가 자녀가 다니는 학교 이사장을 통해 학교발전기금을 수백만 원 내는 것은 허용된다. 학교발전기금은 별도 법에 의해 운영된다는 게 이유인데 학교현장에서 기부를 빌미로 한 금품 수수와 수시 입학이 연계된 비리사례가 쏟아지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흡한 준비로 뒤늦게 수정=김영란법은 지난 2012년 8월 공무원만을 대상으로 발표됐지만 수정에 수정을 거쳐 언론과 사립학교, 어린이집 등이 포함됐다. 법이 적용되는 범위와 대상이 너무 광범위해지자 애당초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를 야기시켰고, 그 결과 권익위는 법 시행 일주일을 앞둔 지난 22일 메뉴얼을 일부 수정했다. 가액기준을 초과한 경조사비 반환범위를 기존 전액에서 초과부분만 반환하도록 했다. 또 정당한 권원(권리의 원천)에 의한 언론사 협찬 요건을 구체화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입법된 대로 집행하면서 그럼에도 사회가 감내할 수 없는 불편함을 모니터링 해 법이나 지침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고쳐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도 준비가 부족했음을 스스로 자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견이 제시될 경우 앞으로 유사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정부의 관계자는 ”처음에는 공무원만 규정하는 단순한 법이어서 지금 같은 부작용을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과거 결혼식 식사 대접을 금지한 관혼상제 규제와 비슷한 사례로 여파는 더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세종=황정원기자·임세원기자 garden@sedaily.com/세종=황정원·임세원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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