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강을 자랑하던 우리나라 조선해양산업이 경기침체와 공급과잉의 늪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혹독한 구조조정을 감행했지만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조선해양산업 강국인 독일의 경쟁력과 최근의 트렌드를 살펴보고 벤치마킹해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19세기 중반 영국을 추월하고 세계적인 조선해양산업의 강자로 우뚝 올라섰다. 하지만 한국·중국·일본 등 다수의 경쟁자가 출현하고 수차례의 글로벌 경기침체를 겪으며 독일은 세계적 명성을 상실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선해양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독일, 무엇이 독일을 오뚝이처럼 일어서게 만들었을까.
바로 선제적 구조조정이다. 독일은 글로벌 경기 침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생산설비와 인적 자원을 줄여야 하는 아픔이 수반됐지만 독일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산업구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현재 독일 조선해양산업은 연매출액 300억유로, 관련 산업 종사자 수 48만여명으로 국가의 기둥이 되는 주요산업으로 발돋움했다.
독일의 선박생산은 여객선(64%), 요트(27%), 군함 및 특수선(풍력, 탱커 등)을 중심으로 생산되고 있다. 또한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외국 경쟁사들과 달리, 독일은 고부가가치 선박과 호화 유람선의 수주량 증가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선박엔진·항해장비 등 조선해양기자재산업은 지속적인 구조조정 끝에, 현재는 제품의 세계적 경쟁력을 인정받아 약 2,800개의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유럽 내 조선해양부품 시장점유율의 15%를 의미한다.
독일의 혁신과 기술개발은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시도는 디지털화다. 독일 조선해양산업의 ‘디지털화’는 Industry 4.0의 산업트렌드에 발맞춰 무인·자동화 선박 생산을 목표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빅데이터를 활용한 선박 네트워크 통합은 효율적인 선박 가동 및 관리를 가능하게 해, 육상과 선박 간의 통합 플랫폼을 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스마트십(Smart Ship)은 이제 점점 현실이 돼가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독일정부의 친환경 선박(Green Ship)도 주목받고 있다. 대기오염과 관련된 규제들이 속속들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독일은 연료전지선박 개발의 선두주자로 다양한 연구개발(R&D)과 투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친환경 선박을 위한 또 다른 대안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연료 추진선박도 있다. 이 선박은 오염물질 배출이 적고 기존 디젤선박을 개조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선주들에게 환경적·경제적 측면을 모두 만족시켜 주는 효자선박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선박 대부분이 LNG 연료를 사용할 것으로 기대되며 LNG 선박 관련 부품개발과 투자 시장은 앞으로 점점 더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독일은 GeMAX(German Maritime Export Initiative)라는 수출 협력 기관을 발족했다. 독일조선해양협회(VSM)가 중심이 된 이 기관의 설립취지는 독일 조선기자재 업체의 수출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점이다. 주목해볼 만한 점은 독일 내 선박금융은행과 협업해 독일산 장비 구매자에 한해 융자 서비스(Equipment-based finance)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수출 기업의 입장에서는 든든한 지원제도가 아닐 수 없다.
조선해양산업은 세계 경기순환에 민감한 산업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안정적인 시장지위를 누리기 위해서는 글로벌 경제 침체기를 지혜롭게 이겨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우리가 지닌 경쟁력 부문을 특화하고 세계 조선해양산업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은 혁신기술 개발과 공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며 정부도 수출기업의 활로를 넓히기 위해 각종 지원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어성일 KOTRA 함부르크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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