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누나·형과 함께 금호동에서 자취했는데 “자취방에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새벽까지 책을 보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 임국희의 ‘여성살롱’ 같은 라디오를 듣는 게 일이었다. 그걸 2~3년 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어쩌다가 학교를 그만두게 됐을까. 안 지사는 “고등학교 시절 혁명가를 꿈꿨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5·18 광주민주항쟁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열 받아서 그해 여름 혁명가가 되겠다고 교과서를 다 팔아버렸다”며 “책가방에는 러시아혁명사, 리슨 양키(Listen Yankee) 같은 서적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설명했다.
부모님의 성화로 두 번째 학교는 주소를 서울로 옮겨서 다녔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부모님을 설득해 독학으로도 대학을 잘 가겠다며 학교를 그만뒀다. 안 지사는 “자퇴서에 도장을 찍고 어머님 손을 잡고 정문 쪽으로 걸어오는 길이었는데 학생들 책 읽는 소리가 나자 어머님이 ‘다른 아이들은 저렇게 공부하는데 왜 너만 그렇게 그만두려 하냐’”며 “털썩 주저앉아 우셨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학교를 그만둔 안 지사는 거의 자취방에 혼자 있었다. 저녁이 되면 대학생인 형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형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같이 사회과학 얘기하고 역사 얘기하고는 했다. 누님이 야학 선생님을 하던 교회의 신자들과 놀거나 전태일이 다니던 청계천 골목길을 혼자 소주병 들고 돌아다녔다”도 회고했다. 안 지사는 “지나보면 그 시절이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 한기가 들어오면 아랫목에 앉아도 안 빠진다고 한다. 그때 외로움과 고독의 상처가 굉장히 오래갔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님의 사랑과 눈물 때문에 버텼다”며 “많은 선배들과 친구들이 나를 존중해주고 선배들은 기특하다고 장하다고 격려해줬는데, 그런 사람들이 나를 버티게 했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그때가 가장 혹독한 성장통과 인생의 시련기였다”고 회상했다. /홍성(내포신도시)=김광수기자 b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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