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며 관가도 크게 술렁이고 있다. 우선 A 장관, B 전 장관 등이 최순실씨 등 비선실세와 내통했다는 설이 난무하면서 해당 부처에는 제2의 문화체육관광부가 되는 것 아니냐는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또 K스포츠재단 건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함께 근무했던 경제부처 관료들이 주요 부처의 요직으로 영전해 자리를 잡으면서 해당 부처들 역시 불편한 시선을 한껏 받고 있다.
A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는 “고위관계자가 청와대에 근무하던 시절, 정식 라인보다는 비선실세를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계에 진출한 전직 고위공무원에 대해서도 해당 부처의 한 공무원은 “당시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정계 진출은 못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는데 결국 국회로 진출했다”며 “비선실세와의 인연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부처 공무원들은 의혹이 돌고 있는 최고위 관료의 사람이라고 낙인이 찍히면 앞으로의 길이 험난해질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앞으로 닥쳐올 인사 태풍에 대해서도 공무원들의 눈치 보기가 극에 달하고 있다. 많은 공무원들은 사실상 ‘식물’ 상태로 전락한 현 정부에서 중책을 맡는 것을 꺼리고 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교체되면 그 아래 비서관과 행정관들도 대폭 물갈이된다. 보통 국·과장급 이상 공무원들은 청와대 비서관 또는 행정관으로 근무한 뒤 기존 근무했던 정부부처 고위직으로 영전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서 청와대로 차출되면 영전은커녕 박근혜 정부의 남은 임기를 함께하는 ‘순장조’가 될 처지다. 더욱이 정권이 바뀌면 전 정부의 사람으로 낙인 찍혀 한직으로 직행한 것이 그간의 관례였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은 최대한 튀지 않게 몸을 낮추고 있다. 한 고위공무원은 “지금은 영전이라도 BH(청와대)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관직은 관운이라지만 지금은 어떤 기준으로 봐도 (영전되면) 관운이 없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정책 추진의 추동력도 모두 사라졌다는 점이다. 중앙부처의 한 국장은 “청와대로 파견 나간 경제수석실 행정관으로부터 자료, 세부 방안에 대한 긴급 요청을 거의 매주 받았는데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고 말했다. 다른 부처의 국장급 인사도 “앞으로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정책 지시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하며 “당장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발표하는 새해 경제정책 방향부터 차질이 빚어질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내년 경제 이렇게 운용하겠습니다’라고 발표한들 먹히겠는가”라며 “대통령 신년사에도 항상 경제정책의 큰 방향이 담겼지만 내년에는 덕담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자조했다.
새로운 정책은 나올 리 만무하고 그동안의 정책을 마무리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또 다른 한 공무원은 “청와대가 국민의 신뢰를 잃었는데 공무원이 열심히 일한다 한들 국민들이 정책의 진정성을 믿어주겠느냐”며 “어설픈 정책을 내놓았다가는 역풍을 맞으면 되레 책임만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부처의 다른 공무원 역시 “현 정부 임기가 1년 넘게 남았지만 그동안 해왔던 것을 마무리하는 수준에서 끝내자는 게 현재 분위기”라고 전했다.
공무원들의 허탈감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중앙부처의 한 국장은 “마치 고스트(유령)와 일을 해온 느낌”이라며 “너무 어이가 없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고위공직자) 인사가 벌어지고는 했던 것이 다 이런 이유였던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다른 공무원도 “성향을 떠나서 정권이 들어서면 그 정권의 철학에 맞게 일선 공무원은 현장에서 뛰며 실행에 옮긴다”며 “각종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그저 의혹이겠거니 했는데 이제는 일할 의욕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공무원들은 대통령 발언 하나하나를 보고 일하는데 솔직히 일이 손에 안 잡힌다”며 “일반 국민들보다 오히려 더 충격을 받고 허탈한 곳이 공직사회”라고 말했다.
/경제정책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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