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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우 HK저축은행 대표 "그저 현재에 충실할 뿐…저축銀 부실사태도 '애살맞게' 이겨냈죠"

[CEO&Story]

“네가 무슨 불사신이냐.”

한국 경제에 막대한 충격을 줬던 두 번의 금융 폭풍을 이겨낸 구영우(51·사진) HK저축은행 대표에게 지인들이 던진 말이었다. 그는 지난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캐피털사,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 때는 저축은행에서 거센 풍랑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애살맞게’ 잘 이겨냈다. 한미캐피탈의 구조조정 실무자, HK저축은행의 리스크관리책임자(CRO)로서 회사를 어떻게든 살려내려 했다. 큰 그림을 그려 대단한 걸 이뤄내려 하기보다는 주어진 업무에 충실했다. 그러다 보니 결과도 좋았다.

“‘애살맞다’는 게 무슨 말이냐면 매사에 좀 악착같이 한다는 뜻인데 경상도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밤새 코피 터지도록 했다는 것은 아니고요. 놀 때는 놀고 일을 할 때는 착실하게 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리스·캐피털社서 금융인 첫발

구조조정 실무 작업 진두지휘

새 기회 찾아 금융전문지 기자로

벤처팀장서 편집국장까지 올라



구 대표는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HK저축은행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그저 현재에 충실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대통령 또는 최고경영자(CEO)인 다른 친구들과 달리 그는 큰 꿈을 가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애살맞다’는 경상도 말처럼 그저 닥친 일에 충실했고 그게 오히려 그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그가 처음 금융회사에 발을 내디딘 것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며 “유학길에 오르기 전 어머니께 빨간 내복이라도 몇 벌 사드리자는 생각에 취업을 한 게 발목을 잡았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구 대표는 홀어머니 밑에서 외아들로 컸다. 유학비용을 조금이나마 스스로의 손으로 마련하고자 금융회사에 취직한 것이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는 “당시 가장 많은 급여를 주는 곳이 리스사·종금사였기에 한일리스(현 효성캐피탈)에 입사했다”며 “1~2년 다닐 생각으로 취직한 금융회사가 생각보다 잘 맞았고 주위에서 능력을 인정해주니 재미도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금융회사 업무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한일리스에서 옮긴 한미리스에서 구조조정 실무를 맡으며 매일 새벽3시에 퇴근하는 삶이 이어졌다. 1999년 구조조정을 끝내는 도장을 찍고 속으로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심신으로 지쳐 있던 때 지인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한 금융전문지에서 벤처팀장으로 일해달라는 것이었다. 언론인으로서의 경력이 없어 잠시 고민도 했지만 새로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일 것으로 생각해 이를 맡기로 했다. 구 대표는 벤처팀장으로 수년간 근무하다 이후 편집국장까지 올라섰다. 구 대표는 “기자 생활이 낯설기는 했지만 대학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즐겁게 일했던 것 같다”며 “짧은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내 인생에 가장 많이 도움된 것은 복잡한 일을 단순화하고 빠르게 의사결정하는 요령”이라고 말했다.

그는 4년간 언론인으로 지내다 이후 연어처럼 다시 본업으로 복귀했다. 한미리스에서 사명을 바꾼 한미캐피탈(현 KB캐피탈)로부터 ‘돌아와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후 한동안은 불편한 삶의 연속이었다. 금융전문지 편집국장은 은행장들도 대등하게 만나는 지위였지만 캐피털사 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은행장들을 한없이 높이 올려다봐야 하는 처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위축이 돼 업무제휴로 인해 은행 본점을 방문할 때가 되면 혹시나 은행 측 고위인사들을 마주치지나 않을까 얼굴을 숨기고 들어가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구 대표는 “바뀐 위치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며 “한참 시간이 흐르고 보니 재미난 에피소드가 됐지만 당시에는 ‘괜히 돌아왔나’ 싶을 정도로 고민도 많았다”고 전했다.

구 대표는 이후 HK저축은행을 인수한 MBK파트너스로부터 이직 제의를 받고 HK저축은행 상무로 자리를 다시 옮겼다. 당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로 저축은행들이 연 20%가 넘는 수익률을 올리던 이른바 ‘저축은행 르네상스’ 시기였다. 저축은행의 전체 대출 중 절반 이상이 PF대출이었고 저축은행들은 막대한 수익에 취해 있었다. 구 대표는 당시 겁이 덜컥 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결국은 크게 무너질 수 있겠다 싶었다”며 “PF 대출을 끊어버렸고 신규 대출을 취급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곧바로 사업구조 개편 작업도 시작했다. PF대출을 일시 중단하고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를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종합금융 30%, 개인금융 25%, 오토금융 25%, 주택금융 15%, 기타 5%’으로 각 사업영역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자산 규모 10위권 정도에 머물렀던 HK저축은행이 업계 2위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구 대표는 “이 비율이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를 견디게 해준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남들보다 빨리 위기를 감지하고 철저하게 리스크 관리를 한 공로를 인정받아 구 대표는 1년 만에 전무에서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다시 저축銀 맡아 수익구조 개편

사업영역 비율 유지해 2위로 도약

산업장비대출 등 틈새 공략 활발

“작지만 강한 상업銀 만들어갈 것”



구 대표는 이제 저축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CEO다. 그는 저축은행의 생존 전략과 관련,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에만 매달리지 말라고도 말했다. 그는 “규제를 풀어주는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스스로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영업망을 넓히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으로 본다”고 말했다. 저축은행들이 대출 모집인에 의존하는 관행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증권사와 은행의 경우 지점장들이 직접 중소기업 또는 개인 고객을 방문하며 자신만의 인맥을 만들고 영업망을 관리하는 데 비해 저축은행은 대출 모집인에 과도하게 의존해 불필요한 영업비용이 많다는 것이다. 경기침체·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HK저축은행의 경우 저축은행들이 사업영역으로 생각하지 않는 ‘산업장비담보대출’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산업장비담보대출은 크레인 등 중장비를 담보로 연 7~9%의 금리를 적용해 장비구매·운용자금을 대출해주는 사업이며 국내에서는 주로 캐피털사들이 담당하고 있다. 구 대표는 “HK저축은행이 산업장비담보대출에서 사업을 일찌감치 시작해 노하우가 많이 쌓였다”며 “대형 캐피털사들과 맞붙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올해 7월 대표이사로 선임된 구 대표는 앞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작지만 강한 상업은행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종합금융·개인금융·오토금융·주택금융 등 네 가지 축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면서 수신 고객에게는 높은 금리를, 여신 고객에게는 양질의 대출을 제공하려고 한다. 구 대표는 “현재 갖춰놓은 포트폴리오를 더욱 굳건히 하되 상대적으로 뒤처진 모바일·핀테크 등 새로운 금융환경에 대한 공략 행보도 가속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구영우 HK저축은행 대표는

△1965년 경상북도 의성 △1984년 대륜고 졸업 △1989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88년 한일리스(현 효성캐피탈) 영업부 △1990년 한미리스(현 KB캐피탈) 전략기획팀 팀장 △1999년 한국금융신문 벤처팀 팀장 △ 2001년 한국금융신문 편집국 국장 △2006년 한미캐피탈(현 KB캐피탈) 상무 △2009년 HK저축은행 상무 △2011년 HK저축은행 부행장 △2016년~ HK저축은행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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