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 10곳 중 8곳이 내년 투자규모를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거나 오히려 축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파악됐다. 신규고용 역시 10곳 중 6곳이 올해보다 늘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정국 혼란으로 대부분 기업이 내년 경영계획을 확정 짓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경영의 바로미터인 투자와 고용부터 일단 늘리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이 같은 상황은 최순실 게이트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보호무역 기조 등으로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가운데 서울경제신문이 21일 30대그룹 핵심 계열사 34곳(공기업과 금융회사 제외)을 대상으로 ‘내년도 경기전망과 경영전략’에 대해 긴급 설문조사를 한 결과 나타났다.
우선 70.6%의 기업은 내년 투자계획과 관련해 ‘올해와 비슷하다’고 답했고 ‘10% 이상 축소’와 ‘20% 이상 축소’도 각각 8.8%와 2.9%에 달했다. 82.3%가 내년 투자규모를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거나 오히려 줄이겠다는 것이다.
내년 채용계획 역시 55.9%가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답했고 ‘10% 이상 줄이겠다’고 응답한 기업도 8.8%였다. 반면 ‘10% 이상 늘리겠다’고 답한 기업은 2.9%에 불과했다. 32.4%는 아예 고용계획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이처럼 투자와 고용의 틀을 보수적으로 짜고 있지만 대기업 계열사 10곳 중 8곳은 아직도 내년 경영전략을 최종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30대그룹의 35.3%는 내년 경영전략 수립과 관련해 ‘초안만 겨우 잡아놓은 상태’라고 답했고 44.1%는 ‘절반 정도만 세워놓았다’고 응답했다. 최순실 특검과 국정조사, 미국 차기 정권의 보호무역 기조, 불안한 환율과 유가 등 경영여건이 좀처럼 가닥을 잡지 못하는 데 따른 것이다.
대기업들은 한편으로 정부의 기부금·출연금 모금방식과 운용에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의 기부금 요청에 대해 44.1%는 ‘아예 없애야 한다’고 답했고 50.0%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응답했다. ‘현행대로 유지’라고 답한 기업은 한 군데도 없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내년에는 여야 정쟁과 정국 혼란으로 대기업 경영환경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본다”며 “글로벌 보호무역 기조에 대처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국내 정치에 발목이 잡히지 않도록 여야가 조속히 정국안정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정명기자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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