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애플보다 뒤늦게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들었음에도 단기간에 글로벌 점유율 1위로 치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핵심 부품인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서 십수년간 설계·제조 노하우를 쌓은 덕분이다. 삼성전자는 비교적 구조가 단순한 D램·낸드플래시를 넘어 컴퓨터·스마트폰의 성능을 결정하는 반도체인 중앙처리장치(CPU)·모바일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의 독자 개발을 열망해왔다. 향후 중점 사업인 스마트카(부품)·스마트홈 역시 고도의 반도체 개발 역량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투자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 내부에서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체계적으로 키우기 위해 담당 사업부인 시스템LSI를 개편하는 방안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스템 반도체의 설계와 제조를 분리,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와 파운드리(수탁생산) 사업부로 쪼개거나 분사시키는 계획이다.
이르면 올해 말 조직 개편에서 임원 인사와 함께 이 같은 방안을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현재 시스템LSI 사업부장은 김기남 반도체 총괄 사장이 겸임하고 있다.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는 크게 모바일AP를 개발하는 시스템온칩(SoC) 개발실과 디스플레이구동칩, 카메라 센서를 설계하는 LSI개발실, 파운드리 사업팀과 지원조직으로 나뉜다. 상당수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SoC개발실과 LSI개발실을 묶어 팹리스를 조직하고 파운드리와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반도체 업계의 관계자는 “삼성 내부에선 각각 지원조직을 갖춘 팹리스 사업부와 파운드리 사업부로 나누거나 아예 팹리스를 분사하는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면서 “이런 개편안이 연내 발표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지만 확정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삼성도 연루된 것이 한 변수”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의 이 같은 시스템LSI 개편안은 한데 뭉쳐 있던 시스템 반도체 설계·제조 역량을 나눠 보다 체계적으로 사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1m) 공정을 통한 시스템 반도체 양산에 성공해 퀄컴과 대형 파운드리 계약을 맺었다. 파운드리 전문 생산기지인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S2)도 내년까지 1조원 이상을 들여 증설하기로 했다.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는 퀄컴이나 대만의 미디어텍에 비해 영향력이 밀린다. 하지만 삼성은 지난해 시스템 반도체의 꽃으로 불리는 모바일AP·모뎀 통합칩(엑시노스8) 개발에 성공해 갤럭시S7에 탑재했고 엔비디아·AMD가 양분한 그래픽처리장치(GPU)의 독자 개발설도 솔솔 흘러나온다. 디지털 신호를 영상으로 바꿔주는 GPU는 조만간 등장할 무인 자율주행차의 핵심 부품으로도 주목받는다.
외주를 받는 파운드리 사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조직 개편이 더욱 필요하다는 주장도 많다. 현재 파운드리 사업팀은 SoC 개발실과 경쟁사격인 애플·퀄컴·엔비디아 등을 주요 고객사로 삼고 있어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개편 방향이 어찌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파운드리와 반도체 설계부서가 같은 사업부에 있으면 안 된다는 내부 공감대는 크다”고 전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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