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풀린 돈이 돌지 않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국내 경기 부진에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가 위축된 상황에서 최순실 게이트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후보의 정책으로 앞으로도 이 같은 현상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28일 한국은행의 통계를 보면 예금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지난 9월 19.6회로 집계돼 8월 20.7회보다 1.1회 떨어졌다. 이는 2005년 2월(18.1회) 이후 11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예금회전율은 월간 예금지급액을 예금의 평균잔액으로 나눈 것이다. 회전율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은행에 맡긴 예금을 인출해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경기 부진과 불확실성 증대, 노후자금 부담 등의 요인 때문에 가계나 기업이 소비와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자금을 은행에 넣어두고만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24.3회로 2006년 23.6회를 기록한 이후 9년 만에 최저였다. 2010년 34.8회였던 회전율은 2011년 34.2회, 2012년 32.7회, 2013년 28.9회, 2014년 26.7회 등 5년째 하락 행진을 지속했다.
이처럼 시중의 자금이 돌지 않으면서 한국은행이 돈을 풀고 기준금리를 내려도 통화정책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9월 통화량(M2·광의통화)은 작년 같은 달보다 6.9% 증가한 2천383조405억원(평잔·원계열)으로 집계돼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요구불예금 잔액도 197조3,188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5.6% 증가하면서 200조원에 육박했다.
예금회전율뿐 아니라 통화의 유통속도, 본원통화의 통화량 창출 효과를 보여주는 통화 승수 등도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통화당국이 돈을 풀어도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구나 4분기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과 주요 대기업 실적악화 여파로 국내경기가 더욱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정부의 정책보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경기 부진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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