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황이 그대로 지속되면 우리나라는 내년에 외환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생산·소비·투자가 다 위축된데다 수출까지 쪼그라들었다. 정상적인 경제 상황이라도 조심해야 할 국면인데 정치 리스크까지 겹쳐 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다. 경제위기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
국내 경제 전문가들은 대내외 악재 속에 경제 컨트롤타워마저 부재한 상황이 계속되면 지난 1990년대 말과 같은 경제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위기 국면을 피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경기대응이 필요하고 정치적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도록 정치권도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제가 악화되면 여당뿐 아니라 야당에도 화살이 돌아간다는 점을 야당도 인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28일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현 경제 상황은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7년보다 더 좋지 않다”며 “그때는 적어도 경제위기 해결을 위해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등 모두가 단합해 경제 컨트롤타워인 부총리에게 힘을 몰아줬지만 지금은 부총리가 선임조차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여당이든 야당이든 청와대든 할 것 없이 아무도 어떻게 할 줄 몰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 원장은 한국이 외환위기로 가는 과정도 시나리오를 통해 설명했다. 그는 “최순실 사태로 기업들의 대외 이미지가 나빠졌고 앞으로도 더 안 좋아질 개연성이 크다. 일부 대기업 중 도산하는 기업도 나올 수 있는데 그러면 단계적으로 중소기업·가계로 충격이 간다. 시장은 이런 징후에 한 발짝 빨리 대응할 것이고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외환은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 외환위기라는 게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도 현 상황을 좀처럼 보기 힘든 위기 국면이라고 진단하고 부총리만이라도 원포인트 청문회를 열어 임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야당은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는 게 현 정권에 부정적이고 본인들에게는 긍정적이라 판단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오산”이라며 “경제위기가 심해지면 국민들은 현 정권뿐만 아니라 야당에도 화살을 돌릴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현 경제 상황을 풀어나갈 단기·중장기적 해법도 제시했다. 우선 정치 일정을 제시해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장옥 서강대 교수는 “정치권이 대통령 퇴진 일정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며 “전직 국회의장 등 원로들이 최근 회동을 한 뒤 대통령이 내년 4월까지는 하야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리스크 관리를 꼽았다. 성 교수는 “경기가 침체되면서 근로소득자는 물론 자영업자도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당국은 당장은 어렵지만 내년 상반기 중에 분위기를 바꿔줄 수 있는 재정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급격한 가계부채 억제 대책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현 경기 상황을 감안해 일단 중앙은행은 유동성을 더 공급하고 완화적인 스탠스를 유지해야 한다”며 “안 그러면 가뜩이나 어려운데 경기충격이 너무 크다. 거시적으로 경기를 일정 부분 뒷받침하는 가운데 부채를 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백웅기 상명대 교수는 중장기적으로 경제운용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것을 주문했다. 백 교수는 “그동안 정부가 주도해온 경제운용의 시스템 틀 자체를 민간 주도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며 “차기 정부, 아니 내년부터는 이런 부분들을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심정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과 관련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백 교수는 “미국이 중국보다 작은 나라인 우리나라부터 치고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데 FTA는 철저하게 하나 주면 하나 받는 구조인 만큼 그쪽에서 하나를 달라 하면 우리도 하나를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FTA로 얻는 소비자의 효용을 포기하면서까지 모든 것을 뒤엎는 재협상까지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종=임지훈·이태규기자 조민규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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