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시점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시기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은 내년 대선과 연관돼 있어서다. 직접적으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이 중심에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반 총장은 내년 1월 귀국을 앞두고 있다.
사안별로 갈등을 겪어온 여당 주류와 비주류가 1일 모처럼 대통령 퇴진시기를 내년 4월로 정하고 6월에 대선을 치르는 안을 만장일치 당론으로 채택했다. 주류와 비주류 모두 여권 내 변변한 대선 후보가 없다는 위기상황에서 시간을 벌 수 있는 최적의 카드로 가능한 대통령의 퇴진시기를 늦추겠다는 것이다.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김무성 전 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했고 남경필 경기지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원유철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지지율이 문제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이들을 향해 “네 사람의 지지율을 다 합쳐봐도 10%가 안 된다”고 말할 정도로 여당 입장에서는 새로운 후보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을 벌면서 반전을 노려보겠다는 속내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퇴진시기를 늦추기는 민심의 역풍을 우려해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을 전제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즈음인 ‘4월 말’을 마지노선으로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탄핵으로 가도 헌재의 결정이 3~4월쯤 나오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이 아직 여당 후보가 될지 보장은 없지만 보수연합의 중심에 설 가능성은 커 보인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정현 대표가 비박계의 집요한 사퇴요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퇴시기를 21일, 늦어도 26일로 정한 것을 잘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 총장의 귀국 한 달전에 친박 성향인 현 여당 지도부가 자리를 비워주면 새누리당이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해 제2창당 수준의 변화를 모색할 것이라는 포석을 내비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반 총장을 중심으로 정계개편이 이뤄지면 자연스레 신보수 연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무성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가 탈당을 통해 개헌을 매개로 야권의 개헌파와 손을 잡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에는 김무성 전 대표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김종인 의원 등이 참여하고 여기에 반 총장까지 가세하면 메가톤급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더민주 입장에서는 내년 4월까지 시간을 벌어줄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즉각 퇴진 또는 내년 1월 말 퇴진 마지노선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날 김무성 전 대표와의 비공개 회동을 통해 “탄핵안이 가결되면 빠르면 내년 1월 말께 헌재의 결정이 날 수 있기 때문에 늦어도 1월 말까지 (대통령 사퇴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이 1월 말 사퇴가 이뤄지면 3월 대선이 가능한데 반 총장의 귀국 이후 행보가 짧아 문 전 대표의 대권가도에는 유리한 상황이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더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표가 후보 지지율 20%대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변수가 될 만한 반 총장의 귀국을 기다려 줄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칫 반 총장이 귀국해 활동공간이 넓어지면 문 전 대표에게는 새로운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야당인 국민의당도 문 전 대표의 독주를 지켜보느니 차라리 판을 흔들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싶지만, 반 총장 변수에 대한 내부 이견조율이 여의치 않아 어정쩡한 상황이다. 실제 이날 보여준 탄핵 가결 날짜를 놓고 안철수 전 대표와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이견을 보이며 혼선을 보인 것도 반기문 변수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차가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야권 일부에서는 대통령 퇴진시기를 4월 말로 정한 것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특검’의 종료 시기에 맞춘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더민주 등 야당은 어떻게 든 대통령의 퇴진시기를 앞당겨 조기대선을 실시해 반 총장의 등장에 따른 대선 변수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복선이 깔려 있는 것이다.
/김홍길기자 wha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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