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우리 몸의 혈관·심장도 추위를 탄다.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는 동맥혈관의 상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혈관 기능을 조절하는 교감·부교감 신경의 균형을 깨뜨린다. 이렇게 되면 혈관이 과도하게 수축하는 등 혈압의 변화가 심해진다. 혈관 탄력성이 줄어드는 40대 이상의 중년층 고혈압 환자라면 혈압이 급상승할 위험도 높아진다.
혈관·심장이 추운 겨울과 아침이라는 두 가지 위험인자에 동시에 노출되면 스트레스는 훨씬 커진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교감신경이 항진되면서 이완된 심신이 긴장상태에 들어간다. 갑자기 찬 공기까지 맞닥뜨리면 말초동맥 수축→혈압상승과 심박동 수 증가로 심장의 부담이 늘어난다.
◇추운 날에는 아침운동 줄이거나 늦춰야=추위는 혈액 응집력을 높여 피떡(혈전)이 잘 만들어지게 한다. 심장이 혈액을 공급받는 관상동맥(심장동맥)의 안쪽 벽에 콜레스테롤·지방산 등이 쌓여 둥지 모양의 죽종(粥腫)이 생기면 말초로의 혈액순환에 장애가 생긴다. 이런 관상동맥 질환자가 추운 겨울 아침 찬 공기에 노출되면 죽종 막이 터져 혈관 안에 피떡이 생기거나 죽종 내부 출혈로 관상동맥 내부의 지름이 급격하게 줄어들거나 막혀 심근경색증이 일어날 수 있다. 일부는 악성 부정맥으로 급사하기도 한다.
뇌혈관의 혈액 흐름을 방해·차단하면 신체마비·언어장애 등을 일으키는 뇌졸중(뇌경색·뇌출혈)으로 이어진다. 추위와 큰 일교차에 노출되면 뇌혈관이 꽈리처럼 부풀어 오른 뇌동맥류 부위가 터질 위험도 커진다. 터지면 사망률이 30~40%에 이르므로 혈압에 문제가 있다면 미리 뇌동맥류 검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
김효수 서울대병원 심혈관센터 교수는 “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을 가진 노인·흡연자 등은 추운 겨울 아침에 갑자기 찬 공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며 “평소 아침 산책·운동을 해온 분들도 추운 겨울에는 운동량을 줄이거나 해가 뜬 후로 늦추고 옷 등을 따뜻하게 챙겨 입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순준 고대안암병원 심혈관센터 교수는 “운동할 때 가슴 부위가 답답하거나 통증·호흡곤란 증세가 느껴지면 즉시 순환기내과·심혈관질환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혈관 수축·이완 요인 엇갈려 부담 커져=술자리가 잦은 연말연시 과도한 음주·흡연에 시달린 다음 날 아침은 심장의 부담이 최고조로 치솟는다. 연중 심장 돌연사 등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이유다.
과음을 하면 다음 날 아침 심장 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거나, 늦어지거나, 불규칙해지는 부정맥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부정맥은 심장에서 전기 자극이 잘 만들어지지 못하거나 자극 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발생하는데 담배·술·카페인과 고혈압·심근경색 등이 주요 유발요인이다. 중증도 등에 따라 가슴 두근거림, 흉통이 오거나 실신·돌연사로 이어질 수 있다.
알코올 성분은 심장근육의 전기 회로를 자극하고 혈관 확장을 유도한다. 술에서 깨어나는 아침에는 역으로 관상동맥이 경련 수축하게 된다. 경련과 이완이 반복되면 부정맥 환자 등의 경우 돌연사 위험이 높아진다. 흡연을 하면 니코틴 성분이 교감신경을 자극해 심혈관계에 부담을 주고 증가한 체내 일산화탄소가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심장·뇌에 산소가 공급되는 것을 방해한다.
따라서 과도한 음주·흡연을 한 다음 날 맞는 아침 찬 공기는 기름을 끼얹고 불에 뛰어드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인슐린 기능 ↓ 무증상 뇌경색 69% ↑=유수종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간 손상 정도는 알코올 도수가 아니라 알코올양에 비례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남자는 소주 3병, 여자는 2병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며 술을 마신 후 2~3일간은 금주하고 불가피하게 마셔야 할 경우 물을 충분히 마시면서 천천히 조금씩, 대화를 많이 하면서 마실 것을 권했다.
심·뇌혈관 질환 악화와 돌연사를 예방하려면 혈류의 흐름을 방해하는 담배, 기름지거나 짠 음식, 술 등을 피하고 걷기·산책·수영 등의 규칙적인 운동으로 혈관과 심장을 튼튼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술을 마셔야 한다면 지방간을 부추기는 기름진 안주를 피하고 콩·두부 같은 식물성 단백과 생선을 섭취하는 것이 낫다.
당뇨병과 무증상 뇌경색에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무증상 뇌경색은 아주 작은 혈관에 문제가 발생해 겉으로는 어떤 증상도 나타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향후 뇌졸중·치매 등이 갑작스레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박진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혈당을 낮춰주는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진(인슐린 저항성) 사람은 정상인보다 무증상 뇌경색이 나타날 확률이 69% 높다”며 “복부비만, 과도한 음주·흡연, 운동부족 등 안 좋은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혈당을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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