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과 가방 얘기는 지난 7일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나온 고영태 증인의 입에서 나왔다. 고 씨는 “맞춤 옷 약 100벌과 맞춤 핸드백 30~40개를 제작해 최 씨 또는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제작비는 최 씨가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서 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가방 값에 대해서는 “오스트리치(타조)는 120만원, 악어는 280만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최 씨가 박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옷 제작비를 한 벌당 30만원으로 치면 3,000만원이고 여기에 가방값을 1,500만원으로 치면 4,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사인(私人)인 최 씨가 공직자인 박 대통령에게 뇌물로 제공하고 이를 통해 온갖 민원을 해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양장만 370여 벌을 마련했는데 (금액으로는) 7억 여원으로 추계되며 이를 최 씨가 부담한 것”이라면서 “최 씨가 부담한 금액에 대해 박 대통령이 (사후에 갚았다고) 증명하지 못하면 명백한 뇌물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이 최 씨를 통해 구입한 옷과 가방 값은 대통령이 용도에 맞게 모두 정확히 지급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해외 순방 때 입는 옷도 있고 공식 행사 때 입는 것도 있고 개인적으로 입는 것도 있고 용도가 다양하지 않느냐”며 “그런 용도에 맞게 명확히 지급됐고 그중에는 대통령 사비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식 행사에서 입은 옷과 가방 값은 공금으로, 개인적으로 입기 위해 받은 옷은 박 대통령 사비로 최 씨에게 결제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 같은 주장은 자료로 입증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 씨는 서울 강남에 ‘샘플실’을 운영하며 박 대통령에게 맞춤 의상과 가방을 만들어줬는데 이는 정식 사업자등록을 내고 한 사업이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실제로 납품 대금이 오갔다고 해도 영수증 등 각종 거래 자료가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만약 최 씨에게 옷 제작비를 줬다고 해도 증빙자료를 남겼겠느냐”면서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돈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아울러 특검 과정에서 최 씨 측이 “오랜 친분에 의해 대가 없이 옷과 가방을 제공했다”고 주장할 경우 뇌물죄 성립 여부가 애매해질 수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경우에도 법원이 대가성을 인정한 사례는 있지만 모두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박 대통령이 옷과 가방 때문에 최 씨에게 권력을 나눠줬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거래관계가 아닌 일종의 ‘이익 공동체’이자 ‘운명 공동체’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에 박 대통령의 옷과 가방이 논란이 됨에 따라 향후 국정조사에서는 최 씨가 조달한 것으로 알려진 귀금속류 액세서리와 한복 값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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