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는 ‘이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종종 직장 내 생존과 직결된다. 처음에는 많은 직원들이 직장 내 입지에 관한 불안을 갖는다. 하지만 이 불안이 해소된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다음 번에 기다리고 있는 질문이 있다. ‘이 회사에 남아있는 것이 맞는 걸까.’ 이는 조직과 개인의 성장 여부에 달려 있다. 개인의 성장은 회사의 성장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만큼 성장이 정체됐다는 느낌을 갖거나 물경력이라는 자각이 들게 되면 두 번째 불안이 커진다.
불안한 직원 만큼 불안한 쪽은 경영진이다. 인재 이탈을 이유로 직원들의 커리어 성자에 투자하는 것을 꺼린다. 세일즈포스의 글로벌 성장 및 혁신 담당 부사장을 역임했던 티파니 보바가 쓴 저서 ‘불안 없는 조직(The experience mindset)’에는 이 같은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한 회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최고경영자(CEO)에게 물었다.
“직원능력 개발에 투자했는데 직원이 다른 회사로 가버리면 어떻게 할까요?”
그러자 오히려 반문이 돌아왔다.
“직원에게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았는데 그 직원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해서 회사에 무슨 좋은 일이 생기나요?”
지난 회에서 팀의 성격을 좌우하는 신중한 인재 채용과 더불어 채용 이후의 단단한 지원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 회에서는 조직 내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심리적 안전감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지를 다뤄볼 차례다.
‘직원에게 집착하라’ 새 화두에 꽂힌 실리콘밸리
지난해 출간된 ‘불안 없는 조직’은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적당한 책이다. 티파니 보바 저자는 ‘고객에게 집착하라’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오랜 원칙에 새로운 목적어가 추가된 것을 포착했다. ‘직원에게 집착하라.’
고객 경험을 높이는 데 강박적으로 몰두했던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최근에는 고객 만큼이나 중요한 이해 관계자로 직원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기업 내 인사관리(HR) 부서의 성격도 변화하고 있다.
공유 숙박 플랫폼 에어비엔비는 기업 중 처음으로 ‘직원 경험 고문(Employee Experience Advisor)’이라는 포지션을 도입할 때만 해도 독특한 사례였지만 최근 들어 이 제도를 채택하는 기업들이 늘어났다. 에어비앤비는 팬데믹으로 인한 레이오프를 겪을 때도 진통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이전에는 직원의 성과를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재에게 적절한 보상과 처벌을 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직원이 경험하는 모든 영역을 관리하고 개선하는 역할에 무게 중심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테면 직무 만족, 조직 내 성장 기회, 회사 문화, 복지 등 직원이 회사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고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쪽에 가깝다. 피드백이 주로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방향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회사와 직원이 서로 양방향으로 피드백을 주고 받게 되면서 관계가 새롭게 정의된 것에 가깝다. 보바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직원경험 개선은 매출 성장과도 직결돼 직원과 고객 경험 모두를 우수하게 관리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3년간 성장률이 두 배에 달하고, 직원경험을 강화하면 매출이 50% 이상 증가하는 결과를 보였다.
두려움 없는 조직에서 불안없는 조직으로
조직 내에서 통용되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는 팬데믹 이후 2022년 하반기 시작된 경기 침체로 빅테크가 앞다투어 대규모 정리 해고를 시행한 시점부터 통용되는 빈도가 늘어났다. 이는 구글 트렌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리 해고에 대한 언급량이 늘어난 시기 전후로 심리적 안전감에 대한 언급량이 늘어나는 경향성을 보인다. 이보다 더 기간을 늘려 보면 팬데믹 이후 원격 근무로 인한 고립감이 늘어나고 생성형 AI붐으로 인해 개인의 업무 효능감이 위협 받고 노동 시장의 불안정성이 더해지면서 직원들의 불안을 최소화하고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경험중심적 조직에 대한 니즈가 커진 것에 가깝다.
이보다 앞서 2018년에 출간돼 한 동안 조직문화의 화두를 이끌었던 책은 에이미 에드먼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쓴 ‘두려움 없는 조직(The Fearless Organization)’이다. 구성원이 회사에서 솔직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심리적으로 안전한 문화를 조성할 것을 강조했다. 심리적 안전감이 높은 팀일 수록 구성원의 참여가 늘어나고 실험과 실패를 통해 배우는 문화가 자리잡기 쉽다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회사의 성장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구글의 신사업 개발 핵심 조직인 구글X의 수장인 애스트로 텔러는 “대담한 과제를 성공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실패해도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라며 실패를 비난하는 대신 학습으로 여기는 분위기를 조성한 바 있다. 구글의 수많은 문샷 프로젝트는 이 같은 분위기에서 나왔지만 지난해 1월 무한정 지원 방침을 바꿔 구글X에서도 대거 해고가 이뤄졌다. 한때 무한한 자원과 현금을 보유한 채 거침 없이 투자를 했던 빅테크가 실패에도 관대한 문화를 만든 게 많은 도전을 가능하게 했다면 경기 침체와 생성형AI 붐은 구성원들의 불안 지수를 높였고 구성원의 불안을 낮춰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기업의 관심이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시대상의 변화로 인해 강조하는 핵심 키워드는 달라졌지만 두려움을 없애는 일이든 불안을 없애는 일이든 ‘신뢰’라는 바탕은 변하지 않는다.
실패는 빠르고 값싸게
이는 결국 실패를 어디까지 기업이 수용할 수 있느냐는 것과 동시에 직원들에게 실패 자체로 낙인을 찍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실행하는 것에 달려 있다. 대표적으로 참고할 만한 사례는 엔비디아의 실패 공유 프레젠테이션이다.
2003년 엔비디아에서 수상한 영상 하나를 공식 채널에 올렸다. 엔비디아의 스티브 심즈 수석 프로덕트 매니저, 토니 타마시 총괄 매니저, 댄 비볼리 마케팅 부사장, 제프 볼류 프로덕트 라인 매니저가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아이디어 회의를 진행하는 영상이다. 직원들은 들떠서 ‘지포스FX’ 시리즈는 역사상 가장 성능이 좋은 그래픽처리장치(GPU)라 이에 맞는 쿨링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앞다투어 아이디어를 보탠다. 이들이 아이디어를 보탠 결과 제품은 산으로 간다. GPU계의 할리데이비슨이 될 것이라면서 할리데이비슨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은 어떠냐는 아이디어가 나오는가 하면 커피머신 소리부터 치과의 기계 장치 소리, 낙엽 송풍기 소리 등에 빗대며 테스트를 계속한다. 이는 직전 해 출시된 FX5800이 거센 소음으로 최악의 망작으로 꼽힌 가운데 소비자들 사이에서 각종 밈으로 탄생하며 희화화되는 실패를 겪은 결과다. 엔비디아는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직원들의 뼈를 깎는 각오가 담겼다.
FX5800이 출시된 2002년 당시 엔비디아에는 1500명 수준의 직원이 있었는데 이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FX5800의 실패 원인을 찾는 실패 공유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됐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치욕스러운 경험일 수 있었지만 실패는 흑역사가 아닌 회사의 자산이 됐다. 혹독한 피드백을 마친 뒤 젠슨황 엔비디아 CEO는 이들 제품 개발과 마케팅 책임자를 그대로 책임자로 둔 채 후속 제품 개발을 맡겼고 다음해 출시된 뒤NV35 아키텍처 기반의 지포스FX 5900은 냉각팬과 방열판 디자인을 바꿔 소음을 크게 줄여 성공작으로 기록됐다. 지나간 실패를 빠르게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선책을 제시해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다는 경험이 엔비디아로서는 집단적인 큰 자산이 됐다. 동시에 엔비디아는 실패만으로 이를 탓하지 않는다는 것을 구성원들이 모두 신뢰하게 한 계기가 됐다. 엔비디아는 오히려 값싼 실패를 장려하는 편이다. 당장 비난받거나 상황을 모면하는 게 두려워 실수를 인정하지 않아 이를 바로잡을 골든타임을 놓치면 그 실패의 비용은 급속도로 커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결국 회사는 직원들의 '이탈'을 걱정하는 대신, '정체'를 더 두려워해야 한다. 직원의 성장이 멈추는 순간 회사도 함께 멈추기 때문이다. 조직이 실패를 허용하지 않으면 직원은 침묵을 선택한다. 침묵하는 조직은 절대로 혁신할 수 없다는 점이 두려운 점이다. 불안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품어내는 조직만이 구성원들에게 진짜 안정감을 심어줄 수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