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9일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한민국호(號)의 국정을 이끌게 됐다. 황 권한대행은 기존의 국무총리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1인 2역을 담당한다. 황 권한대행은 앞으로 국무회의 등 각종 회의를 주재하고 각 부처로부터 보고를 받고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권한대행은 길게는 8개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헌법재판소법의 탄핵심판은 최대 6개월까지 소요될 수 있고 파면 결정이 나온다면 차기 대선이 치러지기까지 2개월을 추가해 8개월 동안 권한대행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 이는 고건 전 총리의 권한대행이 63일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3배가량 길다.
물론 황 총리가 권한대행으로서 직무를 수행한다고 해도 적극적인 권한은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고건 전 총리도 지난 2004년 3월 권한대행으로 직무를 수행할 때 제한적인 업무만 했다. 적극적으로 일하려 해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황 총리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황 총리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거의 없다. 총리실 관계자는 “고 전 총리의 사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래도 황 총리가 당장 해결해야 할 사안은 많다. 내치 부분에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2017년 경제정책 방향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등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 총리로서 거의 손을 대지 않았던 외치도 담당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외치는 청와대의 몫이어서 총리실은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권한대행으로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해 외교·안보를 챙겨야 하고 외국 사절을 접견해야 한다. 필요할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해 국가 간 정상회의에도 참석해야 한다. 특히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빈틈없는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한 대북 제재를 유지하는 것도 황 총리가 해야 할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국정을 수행하는 데 있어 청와대와 국조실 두 조직으로부터 모두 보좌를 받는다.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당시 고건 전 총리의 전례에 비춰보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의 업무는 청와대로부터, 행정부의 컨트롤타워로서의 업무는 국무조정실로부터 보좌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비서실은 권한대행 보좌 체계로 전환된다. 무엇보다 외교·안보·국방 등 분야의 경우 국무조정실보다 청와대 비서실이 훨씬 전문적인 만큼 이 분야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보좌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황 총리는 권한대행 역할을 되도록 정부서울청사에 머물며 직무를 수행할 계획이다.
대통령 탄핵이 이뤄진 날 황 총리가 보인 행보는 조심스러우면서 신중했다. 평소처럼 오전8시50분께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한 황 총리는 기자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짧은 인사를 했지만 표정은 긴장한 듯 굳어 있었다. 말도 극도로 아꼈다. 이날에만 사실상 두 차례의 국무회의를 주재할 정도로 바빴다. 출근한 뒤 곧바로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이준식 사회부총리를 비롯한 28명의 장관을 모두 소집해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는 물론 비공개였다. 하지만 회의 참석을 위해 서울청사로 들어서는 장관들이 기자단에 포착되며 알려졌다. 간담회는 70분간 이어졌다. 비교적 길었는데 당장 챙겨야 할 여러 사안이 많았음을 의미한다.
국회의 탄핵소추 가결안이 오후6시께 청와대에 도착한 직후 황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첫 일정을 소화했다. 다만 총리 개인 자격의 입장을 발표하는 것은 청와대의 발표 이후로 미뤘다. 2004년 고 전 총리는 국회의 탄핵소추 가결 직후 총리 개인 명의로 “제대로 보좌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입장을 냈다.
한편 김병준 총리 후보자도 이날 공식적으로 후보자 사무실에서 철수하고 사실상 후보자 직위를 내려놓았다. 38일간 후보자로 있던 그는 이날 “(탄핵안 가결로) 자연 소멸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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