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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열차는 공짜로 오지 않는다





1857년12월12일, 자유도시 함부르크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세계를 집어 삼킬 것 같은 글로벌 경기 악화 속에 함부르크 경제가 위기에서 극적으로 벗어났다. 공포가 가시고 도산 위기에 몰렸던 은행들이 정상적으로 점포 문을 열었다. 이자 불문하고 급전을 요구하던 기업들은 대출신청서를 접었다. 흔들리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경제도 안정을 되찾았다. 북 유럽은 세계적 공황의 직격탄을 피하며 위기를 비켜갔다.

‘19세기 중반의 세계적 공황’이라니 귀를 의심할 법 하지만 당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핵심부 국가’들은 분명 흔들렸다. 계기는 1857년 여름 미국 뉴욕에서 영업 중이던 한 대형 생명보험회사의 파산. 직원의 횡령으로 대형 금융회사가 문을 닫자 예금 인출 소동이 일고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다. 마침 최선두 산업국가로 금리가 제일 낮았던 영국이 금리를 인상하자 미국에 투자된 유럽 자본이 대거 영국으로 되돌아갔다.

미국 국채의 절반, 뉴욕 증시의 최우량 종목이던 철도 주식의 26%를 보유한 영국 자본이 월가를 떠날 즈음 해상 재난까지 닥쳤다. 캘리포니아 금광에서 생산된 14톤의 금괴와 금화를 싣고 뉴욕을 향해 출항한 ‘센트럴 아메리카호’가 9월 중순 카리브해에서 폭풍으로 침몰해 금융대란에 대응할 자금도 사라졌다. 연말까지 뉴욕증시의 주가가 3분의 1토막 나고 기업 6,000여곳이 문을 닫았다. 금융위기가 산업위기를 넘어 경제 전반의 위기로 번진 것이다.

미국의 경제 위기는 대서양을 넘었다. 크림전쟁 종결로 러시아가 곡물 수출을 재개함에 따라 식료품 가격이 급락하고 철도부지 주변의 부동산 가격 하락, 소비둔화, 생산 격감의 악순환에 빠졌다. 인류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동시다발적인 공황에 ‘세계는 하나다. 산업과 무역, 증기선과 전신이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는 말도 나왔다. 찰스 킨들버거 교수(1910~2003)는 명저 ‘광기, 패닉, 붕괴-금융 위기의 역사’에서 ‘1857년의 공황은 인류가 동시에 경험한 최초의 세계적인 공황’이라고 단언한다.

미국에서 시작돼 영국과 프랑스를 휩쓴 공황이 함부르크에서 정지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돈의 홍수’ 덕분이다. 은화(銀貨)를 가득 적재한 기차가 함부르크에 들어와 돈을 풀자 경색도 풀렸다. 운임을 받지 못한 화물 선주들의 태업으로 기능이 정지됐던 항구도 제대로 돌아갔다. 기업들의 자금난도 풀렸다. 독일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자 무역항인 함부르크가 경제위기를 벗어나며 북부 독일지역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공황을 넘었다.



함부르크를 살려준 곳은 오스트리아. 위기를 맞은 함부르크 의회는 긴급자금 1,500만 마르크의 차입을 결정했으나 예상과 달리 빌려준다는 곳이 없었다. 국제적 자금 과부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해주던 런던의 로스차일드 가문이나 베어링 은행 등도 영국의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다. 함부르크가 내심 기댔던 신흥강국 프로이센은 정책 판단 착오로 급전을 보내지 않았다. 오스트리아는 기대하지 않는 급전을 보내 함부르크를 구해냈다. 이때부터 경제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쓰이는 관용적 표현까지 생겼다. ‘함부르크 은화열차는 언제 오는가?’

오스트리아가 뜻 밖의 자금을 보낸 데에는 경제 위기의 파급을 방어한다는 판단보다는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 있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독일 통일을 둘러싸고 대립하던 상황. 프로이센은 순수 게르만 민족으로 구성된 통일국가를 수립하자는 소독일주의를 주장한 반면 오스트리아는 다민족국가를 세우자는 대독일주의를 표방해 서로 전쟁까지 벌이고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부유한 자유도시인 함부르크의 프로이센 측 가담을 막기 위해 경제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프로이센을 정치적으로 견제하려는 오스트리아의 대출은 함부르크의 위기뿐 아니라 전 세계가 공유한 최초의 위기인 1857년 공황의 확산을 막아냈다.

‘돈의 홍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위기를 맞은 경제에 가장 효능이 뛰어난 처방으로 손꼽힌다. 국내에서 이런 일이 생길 때 ‘최후의 보루(the Lender of Last Resort)’가 중앙은행. 함부르크가 은화 열차의 감격에 젖었던 1857년으로부터 꼭 132주년이 지난 1989년12월12일, 한국은행은 투신사의 건전성 유지라는 명목 아래 주가 부양을 위해 발권력까지 동원하며 투신사에 자금을 쏟아부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증시 안정에 나섰던 당시 12.12조치는 최종대부자로서의 한은의 건전성과 세금을 활용한 주가 부양의 합당성 여부에 대한 논란과 시비를 낳았다.

건전성을 유지해야 할 최후의 보루는 중앙은행 뿐 아니다. 국제 위기가 발생할 때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부자’가 필요하건만 강력한지 의문이다. 근대 자본주의 형성 이래, 로스차일드나 베어링이나 미국계 투자은행 J.P.모건 등 거대 금융자본이나 잉글랜드은행 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IMF(국제통화기금) 등이 이런 역할을 맡아 왔으나 갈수록 그 수습 능력이 약해지고 있다. 곧 출범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국제금융정책이 어떻게 변할지도 관건이다. 은화열차가 올 가능성, 즉 위기를 극복하는 급전을 제공 받을 수 있는 길이 온전할지도 확신하기 어렵다. 변하지 않는 것은 딱 한 가지다. 급전의 가격은 매우 비싸다는 점이다. 은화열차는 결코 공짜로 오지 않는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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