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과 회사채 발행은 기업이 시장으로부터 사업·운영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가장 전통적인 직접금융 수단이다. 앞으로는 일반적인 주식과 회사채 발행 외에도 기업(위탁자)이 각종 자산을 금융사(신탁회사·수탁자)에 맡기면 관리·운용해주는 신탁(信託) 제도를 통해서도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모든 형태의 신탁자산 수익권을 증권으로 만들어 투자자에게 팔 수 있도록 한 ‘수익증권발행신탁’ 제도 도입을 통해서다. 일반 기업뿐만 아니라 금융사도 위탁자가 스스로 수탁자가 되는 개념인 ‘자기신탁’ 제도를 활용하면 유동화가 어려운 여신(대출) 채권 등을 떼어내 관리·운용하면서 자금을 조달하는 게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로서는 기업과 금융사가 자산유동화를 위해 발행하는 다양한 형태의 수익증권을 인수할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12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은행권과 금융투자 업계는 금융위원회가 주도하는 신탁업 개선 태스크포스(TF)에 수익증권발행신탁과 자기신탁 제도의 법제화를 공식으로 건의했다. 금융위는 금융업권 간 갈등이 없는 방안은 수용하겠다는 것이 기본방침이어서 채택 가능성이 높다. 금융 당국은 TF에서 논의된 내용과 업계의 건의사항을 반영해 내년 초 신탁업 개선 방안을 최종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수익증권발행신탁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으로서는 다양한 형태의 자산을 신탁으로 맡겨 현금으로 바꿀 기회가 생긴다. 예를 들어 A사가 상품 판매를 통해 B사로부터 수년 동안 받을 100억원 규모의 매출 채권이 있는데 당장 자금이 필요하다면 이를 신탁자산으로 설정해 신탁회사에 맡긴 뒤 수익증권으로 발행한 다음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면 된다.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을 통해 매출 채권 등의 자산을 현금화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는 등 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해 제한적으로 활용된다. 김진영 신한은행 신탁연금본부장은 “전 세계적으로 신탁은 자산유동화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꼽힌다”며 “다양한 형태의 자산유동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라도 관련 제도를 자본시장법에 반영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회사로서는 수익증권발행신탁과 자기신탁을 복합적으로 이용하면 효율적으로 자금조달을 할 수 있고 신속한 투자활동이 가능해진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은행이 대출 채권을 유동화하고 싶다면 자기신탁 선언을 해야 한다. 자기신탁은 자산을 맡기는 위탁자와 관리·운용해주는 수탁자가 같은 것을 의미한다. 은행이 굳이 자기신탁을 설정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특정 자산을 자기신탁으로 설정하면 고유계정과 분리해 별도의 신탁계정으로 둘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부실 대출 채권을 따로 떼어내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자기신탁 설정으로 신탁계정에 들어간 자산은 신탁법에 따라 금융사의 부도 위험으로부터 격리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수익증권에 대한 최우선 변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이 다소 낮아지는 셈이다.
금융투자 업계는 증권사가 수익증권발행신탁과 자기신탁 제도를 함께 활용하면 더 발 빠르게 국내외 부동산 등의 자산에 투자하는 게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류혁선 미래에셋증권 투자솔루션부문 대표와 최승재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연구 논문을 통해 증권사가 유망 자산을 발견한 즉시 일단 자기자본으로 인수한 뒤 자기신탁 선언을 거쳐 수익증권으로 발행하면 ‘선(先) 투자·후(後) 조달’ 식 투자 활동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지민구기자 mingu@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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