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며 장외에서 벌어지던 주요2개국(G2) 간 무역전쟁이 링 위로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파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 미중 간 외교 대립이 불거지는 가운데 반덤핑·보복관세 문제가 전면에 부상하면서 양국이 통상전쟁의 격랑에 휘말리는 형국이다. 철강과 전자제품,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올해 초 벌어졌던 G2 간의 팽팽한 통상 공방전이 전 산업 분야로 확산되면서 갈등이 더욱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상무부는 12일 홈페이지에 올린 대변인 성명에서 “WTO 가입협정에 따라 이달 11일 중국에 대한 제3국 가격 적용 조항이 끝나야 하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WTO에 분쟁해결 판정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중국 상무부는 제소 배경에 대해 “여러 채널을 통해 제3국 가격 적용 조항이 만기를 맞았다고 알렸지만 미국과 EU가 이에 합당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며 “중국의 법적 권리와 WTO 규정을 지키기 위해 조치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경제지위는 정부 지원 없이 시장원칙에 따라 해당 국가의 제품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을 전제로 WTO가 부여하는 자격이다. 시장경제지위가 유보된 중국은 미국 등의 반덤핑조사 때 자국 내 철강 가격이 아닌 선진국 등 제3국 가격이 적용돼왔다. 미국은 실제로 이를 근거로 지난 5월 중국산 냉연강판에 ‘522%’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하는 등 중국 수입제품에 폭탄 관세를 매겨왔다. 6월에는 중국 전자업체 화웨이를 상대로 대북 불법수출 혐의를 걸어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통화하며 대만 카드를 꺼낸 것에는 관영언론을 통해 불만을 표시하며 소극적 견제에 그쳤던 중국이 미국의 시장경제지위 이슈에 대해서는 WTO에 제소하며 적극적인 공세로 돌아섰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 EU에 대한 중국의 제소가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조치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WTO 규정에 의한 권한과 권리를 결연히 수호할 것”이라며 사실상 미국과의 전면적인 통상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중국이 시장경제지위를 놓고 이처럼 강한 대응에 나선 것은 둔화된 중국 경제회복의 키워드인 철강산업 회생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트럼프가 공약대로 중국산 제품에 45%의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의 대미수출이 87%(480조원) 줄어들고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4.82% 감소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케빈 라이 다이와캐피털마켓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중국 제품에 관세율을 15%나 30%만 부과해도 중국 GDP는 각각 1.75%, 3.81% 감소하는 충격에 휩싸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도 자국 철강산업에 대한 타격 우려로 통상이슈에서만큼은 쉽게 양보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당장 중국산 철강이 미국에 관세 없이 수출될 경우 철강업계에서 40만~60만명이 실직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중국에 시장경제지위까지 허락하면 철강뿐 아니라 다른 중국산 제품의 수입도 사실상 통제수단을 잃게 돼 대중 무역적자뿐 아니라 일자리 문제에서도 홍역을 치를 수 있다.
중국산 제품에 4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에 공장을 만들겠다는 보잉사를 압박하는가 하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며 포화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당장 대중 강경파인 댄 디미코가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거론되고 있다. 철강회사 누코 CEO를 역임한 디미코는 그동안 중국의 철강 덤핑을 강하게 비판해왔다.
철강산업뿐 아니라 중국이 열을 올리는 있는 미국 기업 인수합병(M&A)에서도 미국의 강한 제재가 이어질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이미 2일 중국 푸젠그랜드칩(FGC)이 독일 반도체 회사 아익스트론의 미국 자회사를 인수하려는 계획에 대해 국가안보를 해칠 수 있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미국은 중국산 세탁기에 대해 11억달러(약 1조3,000억원) 규모의 보복적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고 1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 목재제품에 대해서도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다”면서 “시장경제지위를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이 중국의 WTO 제소를 계기로 통상전쟁 수준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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