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미주·아시아 노선 자산을 인수하기로 하고 법원과 본계약까지 체결한 삼라마이더스(SM)그룹이 한진해운의 해외 자회사 7곳은 인수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실사 과정에서 몇몇 법인에 대규모 우발채무가 발생한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SM 측의 의견을 받아들여 가격 조정에 들어갔지만 애초 ‘패키지 매각’을 원칙으로 했던 만큼 최악의 경우 거래가 완전히 깨져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6일 법조계와 해운업계에 따르면 SM그룹이 한진해운 미주·아시아 노선 인수를 위한 본계약 체결 후 실사를 벌인 결과 중국 등 일부 해외 자회사에서 1,000억원가량의 우발채무가 발생했다.
해운업계 고위관계자는 “현지 채권단에서 법인 자산에 가압류를 걸면서 우발채무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SM그룹은 한진해운 미주·아시아 노선 관련 자산을 인수하기 위해 지난달 법원과 본계약을 체결했다. 매각 금액은 370억원으로 현재 계약금 37억원을 낸 상태다.
대한해운은 다음달 3일 주주총회를 열어 한진해운 자산 인수를 결의하고 5일 잔금을 납부할 예정이었다.
SM그룹이 인수하는 대상에는 해외 자회사 7곳 지분 100%와 물류 시스템, 각종 하드웨어 인프라, 육해상 직원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패키지 매각 대상 가운데 핵심으로 꼽히는 해외 자회사에서 대규모 우발채무가 발생함에 따라 SM그룹은 이들 해외 법인의 인수를 포기했다.
인수 주체인 SM그룹 계열사 대한해운(Korealines)의 사명(社名)에 ‘Korea’가 들어간 것 자체도 법인에 대한 현지 채권단의 판단에 악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해운업에 대한 대외 신인도 추락이 국내에서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얘기다.
법원은 SM그룹이 본계약까지 맺고 계약금도 지급했지만 SM그룹의 이 같은 경영 판단이 나름 합당하다고 판단하고 가격을 조정해주기로 했다. 법원 관계자는 “매각을 급하게 진행하는 과정에서 해외 자회사 등의 자산 평가 부분에서 수정 사항이 발생했다”면서 “가격 조정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매각이 무산될 가능성은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해외 법인이 이번 패키지 매각의 핵심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미주·아시아 노선 매각’이라는 이름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됐다는 지적이다. ‘한진해운의 핵심 자산을 현대상선에 넘기면 된다’는 전제에서 시작된 정부의 해운업 구조조정이 총체적 실패를 맞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해운업계 고위 관계자는 “미주·아시아 노선 매각의 핵심은 인수자가 해당 노선의 영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해외 법인 자산들인데 이들 자산이 매각 대상에서 제외되면 사실상 ‘미주·아시아 노선’ 매각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면서 “한진해운 미주 노선의 매각은 실패한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SM그룹이 한진해운 해외 자회사를 포기함에 따라 이들 법인은 공중분해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 선박이 전 세계를 누비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미주·아주 지역 법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노현섭·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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