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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으로 만나는 '레이디 맥베스'] 권력에 눈먼 여인...그리고 몰락

<12월 21~30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서 공연>

아리아 연상 독특한 창법으로 기존 창극과 차별화

콘트라베이스 편성해 국악·양악기 색다른 조화도

한태숙 연출 "권력욕 종말 그린 작품...현시국 상징"

창극 ‘레이디 맥베스’의 타이틀 롤을 맡은 소리꾼 정은혜/사진=국립국악원




“생각해보세요, 기억이 새롭지 않습니까. 마마께서는 벌써 그 날로 가 계십니다. 바로 그 날입니다.”

헝클어진 머리와 초점을 잃고 허공에서 방황하는 눈. 병색 만연한 여인의 귀에 전의(典醫)의 속삭임이 울려 퍼지고, 이는 이내 주문이 되어 ‘저주가 시작된 그 날’로 관객을 안내한다. 남편 맥베스로부터 ‘예언에 내가 장차 왕이 될 것이라 한다’는 편지를 받고 ‘선왕 암살’이라는 흉악한 계획을 다짐한 바로 그 날로 말이다.

21일 개막하는 국립국악원 창극 ‘레이디 맥베스’는 한태숙 연출의 동명 연극을 원작으로 한다. 1998년 초연한 연극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를 맥베스의 부인 레이디 맥베스의 관점으로 재해석했다. “인정의 샘이 넘치고, 높은 것을 신성하게 달성하려고만 한다”며 남편을 다그치고 그의 손에 칼을 쥐여주는 잔혹한 여인은 ‘결국엔 몰락하고야 마는 그릇된 권력’의 표상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각의 원작은 또 한 번 독창적인 방식으로 창극 무대에 오른다. 기존 창극에 익숙한 관객에겐 레이디 맥베스 역의 소리꾼 정은혜가 선보이는 창법이 서양 오페라의 아리아에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는 창극 연출도 주도한 한태숙의 의도적인 설정이다. 한태숙 연출은 “‘레이디 맥베스’를 창극이나 뮤지컬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이전부터 했었다”며 “다만 전통 국악 만으로 작품을 가져갈 용기가 없었고, 정은혜라는 가수가 지닌 창법 자체가 서양의 아리아와도 어울린다고 판단해 (아리아 느낌의 노래를) 의도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신 왕이 된 맥베스가 여는 연회 장면에서는 정가나 판소리 원형의 문법으로 국악의 품격을 녹여낸다는 계획이다.



이번 공연은 국립국악원의 자연음향 공간인 ‘우면당’에서 펼쳐진다. 소리의 잔향이나 울림을 고려한 악기 편성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음악을 맡은 계성원 작곡가는 악기 편성을 최소화하면서도 콘트라베이스를 넣어 국악기와 양악기의 조화를 만들어냈다. 계 작곡가는 “전기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 음향으로 공연해야 해 음악과 배우 노래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했다”며 “극 자체가 배우가 많이 나오지 않는 압축적인 작품이라 악기도 이에 맞춰 최대한 줄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극의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양악기인 콘트라베이스를 편성했다. 그는 “국악기에서는 타악기를 제외하고는 낮은 음역을 표현할 악기가 없다”며 “인간의 죄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콘트라베이스는 물론 개량된 생황이나 가야금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연극에 이어 창극으로 ‘레이디 맥베스’를 선보이는 한태숙 연출/사진=국립국악원


권력을 좇다 몰락하는 여인의 이야기는 의도치 않게 현 시국을 떠올리게 한다. 최면에 취해 그가 저지른 추악한 범죄를 하나둘 토해내는 레이디 맥베스의 모습에서는 자고 나면 새로운 국정 농단·비리가 드러나는 참혹한 요즘이 겹쳐져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한 연출은 “레이디 맥베스는 권력에 대한 과도한 탐닉이 가져온 종말과 거기에 대한 사유가 담긴 작품으로 그러한 성찰이 여러 상징성을 불러온다”며 “굳이 세태에 맞춰 대본을 고치지 않아도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우 정동환이 궁중 전의 겸 맥베스 역을 맡아 드라마의 중심을 지킨다. 12월 21~30일 국립국악원 우면당.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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