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출신 코미디언이 존 스튜어트를 밀어내고, 미국에서 가장 날카로운 정치 논평가로 올라섰다. 그녀의 비결은 좌절의 분노를 숨기지 않는 것이다.
서맨사 비 SAMANTHA BEE(46)는 “다른 사람들 따윈 신경 안 쓰는” 시대에 들어섰다고 말하는 걸 좋아한다. 더 이상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친절하게 대하거나, 괜찮은 척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태도는 그녀가 진행하는 TBS 쇼 <풀 프런털 위드 서맨사 비 Full Frontal With Samantha Bee>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2월 첫 등장한 이후 비는 심야 쇼에서 가장 신선하고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사회자로 매우 빠르게 입지를 굳혀왔다. 그녀가 진행하는 심야 쇼 시청자 수는 현재 코난 Conan의 심야 쇼와 최근 취소된 래리 윌모어의 나이틀리 쇼 The Nightly Show With Larry Wilmore 평균 시청자 수를 넘어서고 있다. 닐슨 조사에 따르면, 그녀는 과거 자신이 12년간 근무했던 데일리 쇼 The Daily Show도 궁지에 몰아 넣고 있다.
동 시간대 남성 진행자들은 가벼우면서도 정중한 농담, 유명인사와의 쾌활한 인터뷰 등을 주요 소재로 활용하지만, 비는 매주 월요일 토론 상대의 급소를 공격하고 있다. 비는 그녀를 추종하는 블로거들이 “가부장제를 타파하는 것”이라고 칭찬한 ‘파워 숄더 재킷’과 테니스 신발을 착용한다. 그리고 확고하고 당당한 자세로 서서 무자비하고, 거침 없고, 명랑하게 방송을 진행한다.
그녀는 직장 내 성희롱을 다룬 특집 ‘서맨사 비의 #포효, 미래 여성을 위한 힘내라 채용 박람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편에서 신랄하고 생동감 넘치는 풍자를 보여주었다. 브렉시트와 이민 특집에선 “영국에 또 다시 갈색인종을 필요할 때가 오면, 그땐 그들이 너희를 점령할거야!”라고 소리쳤다. 토론토 태생인 비는 도널트 트럼프에 대해선 “소리지르는 당근 악마, 오렌지 색의 백인 우월주의자, 미국의 터진 맹장, 카지노 무솔리니”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낙태 자유의 제한부터 논란이 거센 시애틀의 스포츠경기장까지, 모든 주제를 풍자하는 재미있는 별칭들을 많이 준비했다. 그녀와 정치적 견해가 일치하든 그렇지 않든, 비는 여성 중심의 주제가 폭넓은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실제로 풀 프런털 시청자의 절반 이상은 남성이다.
뉴욕의 캐츠킬 산맥 Catskill Mountains에서 휴가를 보내던 비는 전화 인터뷰에서 그녀와 쇼 진행 책임자 조 밀러 Jo Miller는 당초 풀 프런털을 동 시간대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도록 기획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심야 TV의 여성 진행자가 단 두 명(첼시 핸들러 Chelsea Handler는 넷플릭스에서 쇼를 진행한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돋보인 측면도 있지만, 세계가 열정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그녀의 페미니스트 식 진행을 기다려 온 이유도 크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처럼 극심하게 화를 표출하는 시대에는, 심야 방송 진행자들이 보여주는 특유의 ‘가볍고 정중한’ 유머가 그렇게 만족스러울 리는 없다.
비는 부조리한 일에 대해 “당신이 뭘 어쩌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법이 없다. 뚜렷한 영감을 주지 않으면서 “난 그저 코미디언일 뿐이야”라고 자책하고 현실도피를 했던 존 스튜어트 Jon Stewart처럼 빠져나가는 법도 없다. 그녀는 분노를 숨기지 못한다. 비는 “다른 방식의 쇼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 후 잠시 호흡을 고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이런 좌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타르시스가 필요한 것이다.” 그녀는 올랜도 촬영을 마친 후, ’힘을 합해 이 난관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사랑이 어떻게 승리하는지, 사랑이 미움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같은 선의의 말‘만 늘어 놓는 방송계의 오랜 공식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손과 목소리를 모두 떨며 “다 집어치우라고 해! 그런 착한 말을 하기엔 너무 화가 나. 곪은 문제들을 고칠 수 있을 만큼 서로를 사랑해야 사랑이 이길 것 아니야”라고 일갈했다.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라고 말하는 정치인들에겐 “생각은 그만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라”고 촉구했다.
비는 자신의 의도는 항상 “강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코미디 같은 (현실적) 혼란과 싸워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풀 프런털의 관점이 얼마나 ‘격렬한지’ 지난 2월 방청객과의 첫 녹화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것은 계시와도 같았다. 비는 “방청객과 여정을 함께 한다는 느낌이었는데, 그냥 머리에 망치 한 대를 탁 맞는 느낌이었다. 모두 함께 보면서 ‘이럴 수가, 바로 이거야, 와우!’라는 기분이었다”며 크게 웃었다. “방청객들의 얼굴을 보면 그들의 감정적 표현을 다 읽을 수 있다. 무언가 함께 공감하는 순간이었고, 그 순간에서 자유를 느꼈다.” 방송은 그녀에게 치유와 같은 존재다. “녹화를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땐 매우 기분이 좋다. 내 안에서 뭔가 잘했다는 느낌이 들면 너무나 만족스럽다. 매우 만족스럽다.”
이러한 자유로움과 만족은 수 년간의 단련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데일리쇼로 쇼 비즈니스 업계에 들어오기 전, 비는 식당에서 하수도 기름방지 장치를 닦는 일부터 성기능장애 클리닉에서 일하는 것까지 온갖 힘든 직업을 섭렵했다. 그녀는 그 같은 과정에서 여러 상황과 압박감-직장여성이라면 십분 이해할 것이다-을 겪으며 자신의 성격을 형성해왔다. 비는 “수 년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참고 견디며 단련을 했다. 하지만 이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쓸 시기는 지났다. 나와 맞지 않는 환경에서 일해 봤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비는 페미니스트 논쟁의 ‘온도’가 변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도 말했다. 특히 직장에서 그렇다. “이젠 서로 좀 더 솔직해진 것 같다. 우리 경험을 좀 더 정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이제 사람들은 로저 에일스 Roger Ailes (*역주: 직장 내 상습 성희롱 혐의로 사퇴한 전 폭스 뉴스 회장)에게 맞설 수 있다. 매우 좋은 일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력을 고용하겠다고 결심한 그녀도 그러한 변화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풀 프런털은 작가들에게 이름 등을 밝히지 않고 이력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으며, 업계 경력이 없는 초심자도 적극 고용하고 있다. 비 자신이나 밀러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선 완전한 아웃사이더이자 뒤늦게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진입장벽을 낮춰야 할 책임을 느낀다고 말한다. 비는 “우리가 이렇게 업계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투지, 끈기, 결단력 덕분이었다”라면서도 풀 프런털이 아직 코미디의 다양성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Erin Griff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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