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20세기를 풍미한 작가다. 영화로도 제작된 ‘아이 로봇 (I, Robot:1950)’, 바이센테니얼 맨(The Bicentennial Man: 1976)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다작(多作)으로 유명하다. 72년을 살면서 저서를 500권 이상 써댔다.* 주종인 공상과학소설(SF)은 물론 역사와 정치, 경제, 성서 해설, 셰익스피어 해설집과 유머집까지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저작의 대부분이 히트해 한글로 번역된 책자가 127종에 이른다.
1920년1월2일 러시아에서 유대인 방앗간집 아들로 태어난 그는 3세 때 미국으로 이주, 과학잡지에 빠져 소년 시절을 보냈다. 엄격한 유대인 교리에 따라 교육받은 그는 과학서적 탐독을 우려하는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다양한 독서 경험을 쌓았다. 19세부터는 잡지에 SF소설 연재를 시작하고 컬럼비아대학에 진학해 화학을 공부했다. 소설가로 명성을 날리던 중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민간인 군무원으로 해군시험비행단에서 근무하며 특급 타자수보다 빠른 타자속도를 익혔다.
해군에서 근무할 때는 선배 작자들과 자연스럽게 교류도 나눴다. 미국 SF 문학계의 3대 작가(Big Three)거물로 꼽히는 로버트 A. 하인라인, 아서 C. 클라크를 해군에서 만났다. 병역을 마쳤음에도 서류 미비로 육군 근무(9개월)를 거쳐 종전을 맞은 그는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이 보스턴대학 의대 생화학교수직. 1958년부터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 강의를 중단했으나 명성과 업적을 높이 산 학교 측은 나이 40세도 안된 그에게 종신 교수직을 내줬다.
교수이자 작가로서 그의 최대 업적은 과학의 대중화. ‘프랑켄슈타인’처럼 공포의 괴물로 인식되던 로봇을 인간과 닮은 꼴로 묘사해 어린이들에게 꿈을 안겼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3부작’ 주인공처럼 문명을 구하는 ‘역사심리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런 학문이 없어 가장 유사한 경제학을 택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파운데이션의 무대는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먼 미래. ‘역사심리학’이란 인간의 행위는 예측하지 못하지만 사회의 발전 방향을 예상하는 계량적 학문이다. 통계 열역학에서 각 분자를 인간의 단위로 격상시킨 구조와 유사하다. 역사심리학자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방정식을 완성하고 자료를 입력시켰다. 결과는 암울, 그 자체였다. 500년 후에 제국은 붕괴되고 궁극적으로 모든 은하계의 문명도 사라진다는 것. 아시모프는 소설 ‘파운데이션’의 말미에 반전을 넣었다. 암울한 예언 300년 후에 돌연변이체인 인간이 등장해 멸망 시나리오도 사라졌다.
주목할 대목은 대제국의 멸망 원인. 광활한 우주에 걸쳐 10경(京)명이 넘는 인구를 지닌 대제국이 쇠락하는 데 퇴보의 원인을 ‘문제 없음’이라고 그렸다. 편안한 삶에 안일해지면서 망하게 된다는 교훈이 깔려 있다. 아시모프 소설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로봇이나 우주를 소재로 삼았지만 서부 활극의 무대를 우주로 옮겨 놓은듯한 여타 SF 소설과 달리 그는 ‘인간다운 심성을 지닌 인간의 노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아시모프는 인간 사회의 문제를 푸는 열쇠로 ‘생각’을 들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다작 비결을 물었을 때 아시모프의 언급 속에 답이 있다. ‘글이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못해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을 때까지 생각한다.’ 르네 데카르트가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면 아시모프는 생각하기에 글을 썼다.
아시모프는 ‘로봇 3원칙’을 제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1942년 한 과학잡지(Astounding Science Fiction)에 발표한 단편 ‘런어라운드(Runaround)’에서 그는 로봇이 지켜야 할 3대 법칙을 세웠다. 1법칙, 로봇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으며 인간의 위험을 간과해도 안된다. 2법칙,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단 명령이 1법칙에 어긋날 때는 따르지 않아도 된다. 3법칙, 로봇은 1법칙과 2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신을 지켜야만 한다.
아시모프는 1985년 ‘로봇과 제국(Robots and Empire)’에서는 ‘원칙 0’를 추가시켰다. ‘제 0법칙,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하며 인류가 위험에 처할 때 대처하지 않아 인류에게 해를 입히지 않아야 한다.’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 원칙은 ‘인간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법칙 0’를 추가한 이유도 짐작이 가능하다. ‘불안전하더라도 인간들의 집합체인 인류는 존속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아시모프는 말년에 인간의 퇴보를 가장 우려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가장 서글픈 것은 사회가 지혜를 습득하는 속도보다 과학이 지식을 습득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를 비롯한 인공지능의 진화를 보자니 아시모프의 걱정이 실감난다. 방법은 없을까. 아시모프가 1992년 지병인 심장마비 후유증으로 사망했을 때 누군가 말했다. ‘외계의 행성으로 되돌아갔다’고. 그만큼 뛰어났다는 얘기다.
정작 아시모프는 자신의 천재성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간단하게 답했다. ‘수많은 대화.’ 아시모프는 생전에 편지와 엽서 9만 통을 썼다. 세상을 향한 열린 창, 소통과 대화 노력이 시대의 천재를 탄생시킨 것은 아닐까. 새해다. 아시모프처럼 다작이 아니더라도 보다 정성을 들여 글과 편지를 써야겠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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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얼마나 많이 썼는지는 정확한 집계가 없다. 같은 소재와 내용으로 단편을 먼저 쓰고 장편으로 확대하거나 단편과 묶음집이 중복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도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도대체 책을 몇 권이나 썼을까?. 간략 응답; 무지 많이 썼다. 수백 권! 완벽한 답; 당신이 어떤 기준을 갖고 쓰냐에 달렸다.’ 인터넷 영문 사전 위키피디어에서 ‘List of prolific writers(多作家 명단)’으로 검색하면 평생 506권을 집필했다고 나온다. 아시모프 정도면 손가락 안에 들 줄 알았는데 위 검색의 결과가 뜻밖이다. 책을 4,000권 낸 스페인 작가, 2,900권 쓴 독일 작가를 비롯해 800권 이상을 기록한 작가만 12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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