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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교사’ 김하늘 “내가 살아나는 느낌...날 더 믿고 작품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가 그동안 구축해온 자신의 이미지를 뒤집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사실은 김하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동안 제법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왔지만 연기경력 20년차의 김하늘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언제나 ‘로망스’, ‘온에어’ 등의 드라마와 ‘동감’, ‘동갑내기 과외하기’, ‘7급 공무원’ 등을 통해 만들어진 ‘로맨틱코미디의 여신’이라는 이미지가 지배적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쉽게 변할 것 같지 않던 김하늘의 이미지는 2016년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KBS 드라마 ‘공항 가는 길’에 이어 2017년 1월 4일 개봉한 영화 ‘여교사’까지 두 편의 작품을 통해 ‘로맨틱코미디’의 이미지를 벗고 묵직한 연기를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여교사’ 김하늘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




30대 기혼남녀가 겪는 ‘제2의 사춘기’를 그려낸 드라마 ‘공항 가는 길’이 이제 20대의 발랄함을 벗고 30대의 나이에 걸맞는 배역을 입은 김하늘을 보여준다면, 영화 ‘여교사’는 그동안 김하늘이 배우로서 쌓아온 이미지를 모두 뒤집는 작품이다. ‘로망스’와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통해 데뷔 초부터 단아한 여교사의 이미지를 만들어온 김하늘은 ‘여교사’를 통해 그 이미지를 스스로 무너트리며 배우로서 진정한 성장을 위한 한 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영화 ‘여교사’가 개봉한 다음 날,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김하늘을 만났다. 김하늘은 우리가 로맨틱코미디 영화에서 봐왔던 것처럼 여전히 밝은 이미지였지만, 그 뒤에는 배우로서 한층 성숙해진 모습과 자신감이 엿보였다.

영화 ‘여교사’의 언론시사회 직후 쏟아진 기사들의 대부분은 김하늘의 연기에 대한 극찬이었다. 김하늘조차도 “작은 영화인데, 아마 저에 대한 기사는 제가 출연한 그 어떤 영화보다도 많았던 것 같다”고 깜짝 놀랄 정도로 김하늘의 연기에 대한 다양한 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그 정도로 ‘여교사’에서 김하늘은 계약직 여교사 ‘효주’의 비참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연기해낸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외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감정을 내가 느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싫었어요. 연기를 한다는 것은 내가 ‘효주’라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내가 이 감정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죠. 그래도 ‘효주’의 굴욕적인 느낌들이 나랑 안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감정적인 면에서는 배우로서 표현할 여지가 많으니 욕심이 나더라고요. 너무 ‘효주’라는 친구가 불쌍해서, 내가 이 친구가 되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영화 ‘여교사’ 김하늘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


영화 ‘여교사’에서 김하늘이 연기한 ‘효주’의 현실은 처참하다. 10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이희준 분)는 작가를 한답시고 김하늘의 집에 빈대붙어서 빈둥빈둥 먹고 놀기만 하고, 겨우 정교사의 문턱까지 왔지만 이번에는 대학 후배라는 ‘혜영’(유인영 분)이 이사장 딸이라는 백으로 들어와 냉큼 ‘효주’가 갈망하던 정교사 자리를 채어간다.

“영화가 개봉한 후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효주’를 연기하기 위한 준비나 테크닉에 대한 것인데, 솔직히 정말 ‘효주’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이 필요없었어요. 그저 제가 ‘효주’의 감정을 이해하는 작업이 전부였어요. 그것은 저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과정이었고, 그렇게 ‘효주’에게 완벽하게 이해하고 나니 제가 가만히 커피를 마시기만 해도 ‘효주’ 같다고 해주시더라고요. 저도 모니터를 보니 그동안 알던 제가 아니라 너무 어둡고 낯선 친구가 앉아있더라고요.”

“‘여교사’에서 ‘효주’를 연기하면서 나를 발견한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 ‘혜영’이 등장하면서부터는 내가 아니라 ‘효주’라는 친구가 세포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효주’ 뿐 아니라 ‘효주’를 연기하는 저까지도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죠. 정말 이런 경험은 연기를 하며 저에게는 처음 느끼는 감정이고 캐릭터였어요.”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효주’로서 김하늘이 견뎌야 하는 모멸감과 수치심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핸드폰을 압수했다는 이유로 학생이 “씨발, 진짜 선생도 아닌 주제에”라고 소리치는 장면에서는 ‘효주’가 아닌 김하늘 본인의 얼굴까지 화끈거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김하늘에게 ‘효주’는 뒤돌아보면 항상 아슬아슬하고 안타까웠다.



영화 ‘여교사’ 김하늘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


‘여교사’에서 많은 관객들이 극찬한 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자신의 속에 응어리진 감정을 모두 폭발시키고 난 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교무실에서 태연하게 샌드위치를 베어먹는 모습은 섬뜩하고 냉랭한 기운이 등골에 스치게 만든다. 하지만 ‘효주’에 몰입한 김하늘에게는 오히려 다른 부분들이 좀 더 눈에 밟혔다.

“개인적으로 가장 낯설어서 좋았던 장면은 다급해진 ‘효주’가 ‘혜영’이 수업하는 교실을 찾아가 ”추선생, 나랑 이야기 좀 해“라며 매달리던 장면이었어요. 다음에 바로 과학실 장면이 이어지면서 좀 묻히는 느낌이 들지만, 그 신을 연기하는 순간의 제 표정은 제가 봐도 너무나 좋았어요.”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도 내가 저런 표정을 지었구나 새삼 느낀 장면이 많아요. 그만큼 효주에게 몰입했었나봐요. 혜영의 집에서 효주가 차를 탈 때 혜영의 질문에 목이 멘 것처럼 신음소리 비슷하게 ‘어’라는 대사가 갈라져서 나가는데, 이건 제가 연기를 하고도 놀랐어요. 효주의 호흡이나 눈의 미세한 떨림. 내가 정말 ‘효주’의 저런 감정들을 느껴서 저런 연기를 했구나 싶었죠.”

영화 ‘여교사’ 김하늘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


2016년은 김하늘에게 있어 인생의 궤적이 크게 달라진 한 해였다. 개인적으로는 결혼을 하며 한 남자의 아내가 됐고, 배우로서는 그동안 김하늘을 지배한 ‘로맨틱코미디’의 이미지를 털고 ‘공항 가는 길’과 ‘여교사’로 껍질을 깨고 새로운 변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특별히 다른 작품을 해야겠다고 의도했던 것은 아니고, 지금 제 컨디션이 그런 것 같아요. 배우로서 자꾸 그런 연기쪽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에 대한 갈증. 저에 대해 밝은 연기가 잘 어울린다고 하지만, 20년 동안 연기를 하며 예쁘고 사랑스러운 연기는 많이 보여줬잖아요? 이제 제 이름을 책임질 수 있는, 선배 배우로서 저를 좀 더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과감하게 택하고 싶어요.”

“지금의 평가에 전 만족스러워요. 사실 ‘공항 가는 길’도 그렇고, ‘여교사’도 그렇고 제가 선택하기 전 많이 주춤하고 우려했던 작품이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제 선택이 박수를 받았던 것이 너무나 좋아요. 이를 계기로 앞으로 저도 나에 대해 마음을 좀 더 열고, 날 더 믿고 작품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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