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업 확장에 발맞춰 기존 연금신탁·저축신탁 중심에서 벗어난 생활밀착형 상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미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 ‘웰다잉(well-dying)’ 열풍을 타고 활성화된 바 있는 유언대용신탁부터 치매신탁·반려동물신탁까지 은퇴 및 노후를 대비한 다양한 신탁상품이 줄을 잇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유언대용신탁은 고객의 재산을 생전에는 금융사가 관리하며 고객 본인에게 수익을 지급하다가 사후에는 미리 정한 수익자에게 계약 내용에 따라 재산을 상속하는 상품이다. 손자에게까지 재산을 넘겨주는 게 가능해 배우자와 직계자녀에게만 상속할 수 있는 유언장보다 적용폭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또 갑작스러운 사고나 이혼으로 남겨진 자녀에게 안정적으로 생활비를 공급할 수 있는 미성년후견신탁도 여러 금융사에서 제공하고 있다. 자녀에게 재산을 사전 분할하는 사전증여신탁을 활용하면 신탁에서 발생한 수익과 원금을 자녀에게 지급할 때 연 10%의 증여세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재산관리가 어려운 장애인 자녀에게 안정적인 생활비를 지급하는 장애인특별부양신탁도 있다.
치매신탁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치매를 비롯한 질병으로 의사판단이 어려워질 경우를 대비한 상품으로 최근 주목받고 있다. 고객이 금융사에 돈을 맡긴 후 치매가 발병했을 때 후견인에게 치매 치료 및 요양 자금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도록 설계하는 신탁이다. 신탁해지 등에 대해서는 후견감독인의 동의를 받을 수 있도록 의무화할 수 있어 후견인의 부정행위로부터 고객의 재산도 보호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신탁상품을 한데 모아 제공하는 서비스도 내놓고 있다. 신영증권(001720)은 최근 종합자산관리와 자산승계·특별부양·공익기부까지 한 번에 처리해주는 ‘신영 패밀리 헤리티지 서비스’를 출시했다. 투자자의 자산을 종합 관리해줄 뿐만 아니라 유언대용신탁·가족안심플랜 등의 상속 및 증여 서비스도 한 번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사람에 더해 반려동물을 위한 신탁도 등장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0월 고객이 사망하면 반려동물(개·고양이)의 새 부양자에게 사전에 맡긴 자금을 지급하는 ‘KB펫신탁’을 출시했다. 오영표 신영증권 신탁부 부장은 “미국과 일본 등 신탁이 발전한 국가에는 고객의 상황과 요구에 맞춤화된 다양한 신탁상품이 일반화돼 있다”며 “우리나라도 보험금청구권 등으로 신탁자산 범위를 확대하는 등 규제가 완화되면 더욱 다양한 신탁상품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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