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은행의 기업대출이 사상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대내외 불확실성 증가로 올해 경기 전망에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기업이 부채비율을 줄이는 등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1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12월 말 기준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규모는 744조9,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15조원 감소했다. 이는 2010년 통계 작성 이후로 최대 감소 폭이다.
통상 연말은 회계연도 결산을 앞두고 은행은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기업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빌린 돈을 갚는다. 한은 관계자는 “통상 연말에는 은행이 부실채권을 매각하거나 상각하고 기업도 부채비율 관리를 위해 대출을 일시 상환하는 등의 계절적 요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의 경우에는 그런 계절적 특징이 두드러졌다. 실제로 12월 기업의 은행대출 증가액을 연도별로 보면 △2010년 -12조6,000억원 △2011년 -9조1,000억원 △2012년 -11조8,000억원 △2013년 -12조7,000억원 △2014년 -2조1,000억원 △2015년 -9조9,000억원이었다. 트럼프 리스크를 비롯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조기 대선 등 대내외 불확실성 증가로 기업도 재무구조를 탄탄히 하기 위해 빌린 돈을 예년보다 더 많이 갚은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이 9조2,000억원, 중소기업은 5조8,000억원 각각 감소했다. 꾸준히 2조원대 증가세를 이어오던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액도 5,00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금융당국의 연이은 대출 억제책에 가계부채 증가세도 눈에 띄게 둔화했다. 12월 말 기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708조원으로 전월 대비 3조5,000억원 증가했다. 11월 증가액 8조8,000억원, 전년 12월 증가액 6조9,000억원과 비교하면 크게 낮아졌다. 2010~2015년 12월 평균 증가액(3조7,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은은 대출 금리 상승으로 인해 11월에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몰렸던 것, 그리고 주택 거래량 감소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11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 12월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장 금리가 급등했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도 12월 9,450가구로 전월(1만986가구) 대비 1,500가구가량 줄었다.
11월 전월대비 6조1,000억원 늘었던 주담대는 12월엔 예년 평균(3조8,000억원)을 밑도는 3조6,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마이너스 통장 대출 등의 잔액 규모는 2,000억원 감소했다. 연말 가계의 마이너스통장 대출 등은 연말 상여금의 영향으로 다른 달보다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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