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일본 아베 정부는 오는 2018년부터 매년 모든 처방약의 실제 유통가격을 조사해 약값을 조정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2년에 한 번, 건강보험에서 특정 약품에 지급하는 공식 가격이 제약사가 도매상에 판매하는 시장 가격과 차이가 큰 경우에만 약 가격을 조정을 검토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 범위와 횟수를 모두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사실상의 약가 인하 정책 아니겠느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일본뿐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 지난해에 이어 지난 11일 있었던 첫 기자회견에서 “제약업계가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는 일은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약가 인하 바람이 일본에도 번지면서 국내 업체들의 해외 기술수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제 꽃피기 시작한 국내 바이오제약 업체들의 ‘라이선싱 아웃(기술수출)’ 길이 좁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바이오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16일 “혁신 신약에 대한 적정 약가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글로벌 제약사들이 과거처럼 과감한 연구개발(R&D)에 뛰어들 수가 없다”며 “우리나라의 제약 바이오벤처의 기술이전 기회 역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말 동아에스티는 글로벌 제약사 애브비의 자회사 애브비 바이오테크놀로지에 6,000억원 규모의 ‘항암제 기술(MerTK)’을 수출했다. 코오롱생명과학도 지난해 11월 일본 미쓰비시다나베제약에 최대 5,000억원 규모의 퇴행성관절염 치료제 ‘인보사’ 수출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한미약품의 일부 계약파기건도 있었지만 중소 바이오제약업체들의 기술수출도 최근 몇 년 새 꾸준히 증가세인데 미국과 일본의 약가 인하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의약품의 수출물량도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당장 일본에 대한 수출감소 우려가 크다. 의약품 수출입협회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의 대일 의약품 수출액은 6,200억원 규모로 총 수출액 3조 3,000억원의 가장 큰 비중(약 18%)을 차지한다. 일본 수출 비중이 높은 코오롱생명과학 관계자는 “타 업체와의 가격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제품의 수출에 주력할 계획이며 거래 국가 다변화도 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도 약값을 깎고 있으니 우리도 더 낮추겠다고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며 “우리나라는 현재도 신약에 대한 보상이 인색한 편이라 신중한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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