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새벽(한국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을 뜬 눈으로 지켜본 경제부처는 “선거 유세처럼 노골적으로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했다”고 평가하고 우리 경제에 거센 폭풍이 올 수 있다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
22일 기획재정부 대외경제국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유세 과정에서의 공약을 그대로 실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취임사에서는 이를 그대로 추진한다고 밝혔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사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내가 세운 단순한 두 가지 규칙은 미국산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것”이라며 “수십년간 우리는 미국 산업을 희생한 대가로 외국 산업의 배를 불렸다”고 직설적으로 언급했다. 또 “미국 공장은 문을 닫거나 떠났으며 수많은 노동자만 실업자로 남게 됐다”며 “우리 중산층의 부는 사라지고 전 세계에 나눠졌다”고 강조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취임사에는 ‘carnage(대학살·살육)’이라는 표현까지 들어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공장이 사라지는 등 미국인이 빈민가에 머무는) 대학살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경제부처에서는 “그래도 취임사는 국내 단합을 강조하고 우방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데 마치 선거 캠페인을 하는 것 같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또 앞으로 국내 정치·경제 혼란을 중국 등 외국 때리기로 대응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한국이 과거 정치·경제적 위기 때마다 북한이라는 ‘공공의 적’을 부각시켜 국민 불만을 외부로 분출했듯이 트럼프 대통령도 해외 이슈를 부각시켜 관심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 국내외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잘 안 풀리면 한국·중국 등을 지적하며 실패의 원인을 해외로 돌릴 수 있고 이 과정에서 통상·환율 마찰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대로 역대 취임 초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낮고 내년 중간선거도 예정돼 있어 이른 시일 내 성과를 보기 위해 보호무역주의 정책 등을 밀어붙일 수 있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은 점도 우리 정부는 불안하게 받아들였다. 기재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취임사로 큰 방향은 나왔지만 구체적 방안이 없어 아직도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행동할지 판단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밝혔다. 기재부 경제정책국의 한 관계자는 “미 재무장관 등이 의회 인준을 받고 나면 공식 접촉이 가능하므로 미국의 의중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서로의 이익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했다. 셰일가스 수입의 경우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수입선 다변화 차원에서 미국산을 늘리자는 목소리가 있고 미국에서도 자국 제품이 많이 팔리기를 원하므로 접점이 맞아 떨어지는데 이 같은 사례를 더 발굴하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열리는 23일 한국 및 아시아 금융시장의 반응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미국과 유럽증시는 소폭 올랐지만 보호무역주의의 타깃이 되는 아시아 증시는 다르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