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그룹이 한국신용평가의 신용등급 강등에 불복하며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신용평가사의 등급산정 결과에 대해 기업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어서 이랜드의 실력 행사가 실제로 돌입하면 적지 않은 파장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23일 이랜드의 한 고위관계자는 “한신평이 이랜드월드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하향조정 한 사유가 적정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며 “이에 대한 시정요구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만큼 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랜드그룹은 신평사의 신용평가의 주요 지표 중 하나인 지난 9월 말 기준 순차입금 EVITDA(영업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6.7배에 달하고 있고 중국패션법인 등 주력자회사의 영업실적이 4·4분기를 포함할 경우 기준이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이랜드그룹은 중국법인의 11월 매출이 중국 최대 쇼핑시즌인 광군제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랜드의 광군제(11월11일) 매출은 3억2,900만위안(약 563억원)으로 전년 대비 89%나 늘었다.
앞서 한신평은 지난해 12월 말 이랜드월드의 무보증회사채 신용등급을 BBB(부정적)에서 BBB-(부정적)로 강등했다. 당시 한신평은 △유동성 위험 확대 △중국패션법인 등 주력 자회사들의 영업실적 가변성 지속 △이랜드리테일 IPO와 부동산 매각 진행 여부 △연결기준 순차입금과 이랜드리테일 전환상환우선주 대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지표 7배 상회 △별도기준 순차입금과 지급보증 대비 에비타 지표 8.5배 상회시 이랜드월드 신용등급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한신평은 중국 시장에서 이랜드월드가 온라인쇼핑 대신 성장 정체기를 맞고 있는 백화점에 치중하고 있는 점을 위험요인으로 꼽았다. 이에 대해 이랜드 측은 “한신평의 중국 백화점 유통채널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은 미래 추세를 분석한 것으로 현재 재무상황을 반영해야 하는 신평사의 분석 틀과는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랜드 측은 설 연휴 기간 이후 법적 대응 여부를 결정해 이르면 다음달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랜드월드의 차입금 1조2,000억원 중 93%에 해당하는 1조1,100억원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차입했다. 그룹 전체적으로는 차입금 상환에 연간 4,000억원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이랜드의 실력 행사는 신평사가 회사채를 발행하려는 기업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등급을 산정하는 ‘갑을’ 구조를 감안하면 ‘신용등급 쇼핑’ 현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신평사 관계자는 “이랜드가 실제 소송에 돌입할지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법적 대응을 운운하는 것은 신용평가 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갑의 횡포”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대우조선 분식회계 이후 신평사들이 몸 사리기 차원에서 신용등급을 너무 보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박시진·박준호기자 see12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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