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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우울한 사람들] "몇달째 월급 못받아 고향 못가요"

경기침체 여파 임금체불 늘어

작년 1조4,286억 역대 최고

악덕업주 고의적 체임 다반사

전문가들 "처벌 수위 높여야"

알바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동 맥도날드 망원점에서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피켓을 매장 전면에 부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는 이번 설에 바빠서 못 뵌다고 둘러댔는데 아내와 아이들 볼 낯도 없네요.”

건설 현장에서 3년째 비정규직 기술자로 일하고 있는 A(47)씨는 26일 서울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시공사의 자금난이 악화돼 월급을 석 달째 받지 못했다”고 말한 뒤 고개를 숙였다. 그는 “처음에는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현장 관리자의 말만 믿고 일을 계속했는데 최근 그마저 연락이 끊겨 동료들이 깊은 실의에 빠져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설날이 다가왔지만 경기침체 장기화로 땀 흘려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해 ‘행복한 명절’을 빼앗긴 많은 근로자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32만5,430명으로 전년(29만5,677명)보다 10%나 늘었다. 체불임금 규모도 지난해 1조4,286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임금 체불 규모가 가장 컸던 지난 2009년 수준(1조3,438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신고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실제 체불임금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금 체불 규모는 사상 최대치에 달했지만 정작 이에 대한 처벌이나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돌려주기 위한 제도적 기반은 미비하다.

한국계 미국인 B씨는 2011년 국내에서 해외 유명 청바지 브랜드 Y사를 론칭하고 직원 6명을 채용해 1년간 회사를 운영했다. 하지만 이후 사업이 어그러지면서 직원 월급 1억3,000만원을 지급하지 못해 서울지방노동청에 고소를 당했다. 이후 B씨는 수차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도 밀린 월급을 갚지 않았고 지난해 출국정지가 됐다.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지난 2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금 체불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체불임금 규모는 1조4,286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연합뉴스


B씨는 이달 초 국내에 입국했다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그는 법원에서 “조만간 체불임금을 전액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한 뒤 풀려났다. 이후 근로감독관이 B씨와 연락을 취하려 했으나 지금까지 연락이 끊긴 상태다.

이번 사건을 맡은 한 근로감독관은 “B씨는 최근 1년간 10여차례 국내에 입국하면서도 변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고 임금을 받지 못한 한 종업원은 이미 사망해 사실상 권리구제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안타까워했다.

Y사 이외에도 최근에 이랜드그룹의 ‘아르바이트생 임금 체불 파문’이 사회적 문제가 됐고 맥도날드는 지난해 망원점 직원 60여명에 대한 임금 체불로 사회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에 따라 임금 체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체불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나 B씨의 사례처럼 실제 처벌 수위는 훨씬 못 미치는 실정이다.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업주들이 종업원의 임금은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고의·반복적인 임금 체불업주의 경우 뒤늦게 임금을 지급하더라도 강력한 제재를 받도록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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