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 광장에는 자동차가 없다. 모든 자동차가 광장 지하를 통해 지나가기 때문이다. 덕분에 라데팡스 광장에는 초현대적인 디자인의 건물들이 들어설 수 있게 됐고 보행자들은 광장의 넓은 거리를 자유롭게 다닌다. 반면 우리나라는 도로공간 개발이 사실상 공공 목적이 아니면 허용되지 않았다. 라데팡스처럼 공간 활용도 어렵다. 더욱이 도로 부지는 국·공유지기 때문에 정부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민간 개발도 허용되지 않았다. 서울 서초구가 양재∼한남IC 6㎞ 구간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에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던 이유다.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16일 ‘도로공간의 입체적 활용을 통한 미래형 도시 건설 활성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서초구의 계획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부고속도로의 양재∼한남IC 구간을 지하화하면 여의도 공원 면적의 2.5배인 60만㎡ 가용토지가 발생해 이를 활용한 다양한 사업 추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인근의 부동산 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활성화 계획으로 도로의 상공과 하부 공간을 활용할 수 없어 현대적인 설계를 하고도 건축까지 이어지지 못했던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성남 판교 알파돔시티다. 알파돔시티의 최초 개발계획은 각 건물의 상부를 연결해 돔 형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간이 도로 상공을 개발할 수 없다는 규제 때문에 건물들의 상부를 잇지 않은 형태로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이름과는 달리 ‘돔’이 없다.
규제 완화로 건물과 도로를 하나의 건축물로도 만들 수 있다. 우리 건축물들은 그동안 도로와 동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도로·건물 일체형 시설, 건물 옥상 간이 휴게소, 도로공간을 활용한 랜드마크 건물 등 창조적인 디자인 건축물들이 속속 건설돼 도시 경관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가로주택정비구역 사업 대상도 넓어진다. 현재는 도로가 설치된 경우 가로주택정비사업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도로가 통과해도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해 개발하는 것이 입증되면 정비구역에 포함된다. 또 인근 주민이 함께 이용하는 공동이용시설을 설치하는 경우에는 용적률을 상향하는 등의 혜택을 줄 예정이다. 가로주택정비사업 대상이 확대되면 도로 지하에 주차장을 통합할 수 있고 도로 상공에 구름다리와 같은 연결통로를 만들 수 있어 쾌적한 주거환경 구축과 저렴한 주택공급이 가능해진다.
다만 누가, 얼마만큼의 도로 상공과 지하를 사용할지를 놓고 특혜시비가 일어날 수 있어 법제화 과정에서 사업자 선정 기준 등을 충분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 국토부는 도로 자체에 대한 소유권은 공공이 유지하되 50년 이상 등 일정 기간 민간의 개발·이용을 허용하는 형태로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올해 12월 도로법 개정, 내년 말 세부지침 정비 등을 거쳐 ‘입체도로 개발구역 제도’와 ‘도로공간 활용 개발이익 환수금’을 신설한다.
도로공간의 개발을 통해 발생되는 이익의 일부를 환수해 도시 재생과 도시·교통의 신산업 분야에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김정렬 국토부 도로국장은 “도로의 상공과 하부 공간에 민간이 문화·상업시설 등 다양한 시설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했다”며 “도로를 입체적으로 활용해 도시·건축 분야의 창의성이 증진되고 도시 경쟁력도 점차 강화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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