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손실을 감수하면서도 보험을 해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보험은 중도해지하면 손해를 크게 보기 때문에 가장 마지막으로 해지를 고려하는 금융상품이지만 팍팍한 살림살이와 빚 부담으로 손해를 감수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2일 금융감독원이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중 보험계약 중도해지로 소비자가 원금손실을 본 금액(납입 보험료-해지 환급금)은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합쳐 3조8,903억원이었다.
보험 중도해지로 인한 연간 소비자 원금손실 규모는 2012년 4조9,982억원에서 2013년 4조4,029억원, 2014년 4조1,928억원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2015년 4조8,579억원으로 1년 새 16% 늘어난 뒤 큰 규모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소비자가 보험계약 중도해지로 원금손실을 본 금액은 2012년부터 2016년 3분기까지 5년간 15조6,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이 중 생명보험은 13조4,000억원 손해보험 2조2,000억원이다.
전문가들은 손해를 보면서까지 보험을 해지하는 이유를 늘지 않는 가계소득과 빚 부담 증가에서 찾고 있다.
소득이 정체돼 보험금 납입에 갈수록 부담을 느끼는 상황에서 가계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까지 커지니 가계가 ‘울며 겨자 먹기’로 보험을 깨 빚을 갚거나 생활비로 쓴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중도 인출을 하는 것을 넘어 손해를 감수하고도 보험을 해지하는 현상은 서민 경제에 적색등이 켜졌다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보험금을 담보로 돈을 끌어다 쓰는 가계도 늘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보험사들의 약관대출 잔액은 53조6,661억원으로 1년 새 4.2%에 해당하는 2조1,743억원이 늘어났다. 약관대출은 까다로운 대출심사 없이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생계형 대출’로 통한다. 대출 금리가 최소 4.0%에서 최대 9.22%(올해 2월 공시 기준)로 시중 은행에 비해 높은 편이다.
임태준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생명보험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해지 환급금 지급 규모가 증가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라며 “이를 두고 경기 불황으로 보험료 납부에 부담을 느낀 계약자의 보험 해지가 증가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비자가 보험료를 꾸준히 납입하고 혜택을 봐야 할 시점에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금융당국에서 관심을 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박 의원은 “보험사들이 매년 해지 환급금으로 수 조원에 이르는 수익을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벌어들이고 있다”며 “환급 체계가 합리적인 수준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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