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겨울잠에 빠진 개구리들도 눈을 뜬다는 3월. 지난주까지만 해도 비바람이 불며 쌀쌀하더니 금세 따스한 바람이 귓불을 스친다. 그렇다. 개강과 학기 그리고 사랑이 시작하는 계절인 ‘봄’이 왔다.
혹자는 본격적인 한 해의 시작은 1월이 아니라 꽃피는 3월이라고 했던가. 이제 막 새출발하는 대학 새내기 혹은 신입사원은 물론이거니와 늘 복붙(복사·붙여넣기의 줄임말)한 톱니바퀴 사이클에 갇혀있는 일명 ‘헌내기’마저도 설레는 시기다. 특히 지난해 유독 막장 드라마급(?) 이슈들이 많아 눈과 귀는 너덜너덜, 심신이 피폐해진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더러운(!) 기운을 훌훌 털고 자라나는 새싹같은 마음으로 2017년을 달리기 위해 맛집 기자들이 상큼발랄한 맛집을 준비했다. 한창 썸타기 시작한 남녀 청춘들, 묵은지마냥 오래 만나 연애 세포가 썩기 직전의 장수커플들, SNS 인증샷에 죽고 사는 언니 오빠들이라면 필독 요망!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뜨고 있는 샤로수길(서울대입구역에서 낙성대역 위치한 핫 플레이스로 서울대 로고 ‘샤’에서 본뜬 말)에서 가장 핫하다는 프랑스 홍합집이다.
One go! ‘지식을’ 씹고!
세계 인구 순위 21위의 국가 프랑스. ‘옷깃만 스쳐도 로맨스’라는 말처럼 세상 가장 로맨틱한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는 사실 미식가들의 천국이라고도 불린다. 지중해와 대서양이 근접한 지리적 특성에 온화한 기후까지 더해져 산해진미가 풍성해진 덕이다. 전세계 1,300여 명의 셰프가 참여하는 미식 축제 구 드 프랑스가 열리고 2010년엔 미식 분야 최초로 프랑스식 미식 문화가 유네스코 세계 무형 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프랑스 관광청에 따르면 ‘요리를 신중히 고르기, 어울리는 풍미를 가진 좋은(가급적이면 현지의) 생산물 구입하기,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 고르기, 식탁 아름답게 차리기, 음식을 먹는 동안 식탁에서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기’ 등의 관습들이 프랑스식 미식문화에 포함된다.
이말인즉 좋은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도 중요하지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해공의 먹을 수 있는 자원들이 풍부하다 보니 프랑스에서는 지역별로 독특한 전통 음식이 발달했다. 그 중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와인과 바게트를 곁들여 먹을 때 가장 가성비 좋은 음식으로 홍합찜(moules)을 꼽는다. 홍합을 와인에 재워 각종 채소들과 함께 푹 찌거나 우려낸 스튜(stew·버터와 잘게 썬 감자, 당근, 마늘 등을 섞어 익힌 스프류)나 찜 요리는 가난한 유학생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이다.
Two go! 화끈하게 빨고!
요즘 대세는 가로수길말고 ‘샤로수길’
Three go! ‘취기 가득한 로맨스’를 추억하고!
결혼을 목전에 앞둔 예비 신랑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혹독한 절차가 한 가지 있다.
일명 사위 테스트라고 장인어른과 독대(獨對)하는 자리를 갖는 것이다. 이는 예비 사위에게 금쪽같은 자신의 딸을 믿고 맡겨도 될지 술잔으로 가늠해보는 주사(酒邪) 테스트다. 한 병 두 병 비울 때마다 희미해지는 정신줄을 부여잡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여줘야 깐깐한 장인어른의 합격 도장을 거머쥘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장인어른이 진짜 핏줄인 부모님을 제외하고 무려 네 명이나 더 있다. 각각 18년차·13년차·10년차(2명) 베프(Best Friend·베스트 프랜드의 줄임말)들이다(베프라고 부르고 준(峻)장인어른이라 쓴다). 대학 입시 후 합법적으로(?) 이성을 만나 데이트하기 시작한 20대 시절. 누군가를 만나 달달한 연애를 시작하고 안정기에 접어들면 늘 필자의 준 장인어른들은 저녁 식사 자리를 주선하라고 아우성쳤다. 본격적인 사위 테스트에 들어가겠다는 으름장과도 같았다. 자타공인 깐깐한 그들과 필자의 그 남자가 함께 만나는 시간은 늘 저녁 7시였다. 영등포 모처에 위치한 무한리필 홍합탕집에서. 맛있는 안주 대신 무한 리필이 가능한 홍합탕을 시켜놓고 자정이 될 때까지 술도 무한대로 마셨다.
장인어른들과 필자 그리고 그 남자까지 모두 알딸딸한 상태에서 최순실 청문회 때보다 독하고 무시무시한 질문들이 오갔다. 소주병을 마이크 삼아 ‘모릅니다’라는 회피 대신 진솔한 그의 답변이 장인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나면 그제서야 친구들과의 화기애애한 술자리로 바뀐다. 누군가 이 통과의례(?)를 들으면 ‘사람 잡겠네’라고 할 수도 있을테다. 하지만 무모해 보이는 이 과정을 통해 실제 몇몇 베프들의 경우 나쁜 사람을 걸러내기도 했다. 취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그, 낯선이에게 스킨십을 서슴지 않는 그, 심지어 옛 애인의 이름을 부르는 그까지. 아, 참고로 나 역시도 이 베프들에게 장인 어른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아무튼 공포의 술자리를 무사히 통과한 애인에겐 차후 친구들과의 모임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시원한 홍합탕과 함께 다져진 의리의 일환이었다. 혈기왕성했던 그 시절 우리는 다섯 명 각자 달달한 로맨스 속에서도 때론 서로의 매콤한 장인어른의 역할을 자처하며 수많은 홍합탕을 비워냈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고 불린 우리들의 사위 테스트는 필자가 26살되던 해에 만난 그와의 자리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실제 우리들의 아지트였던 그 영등포의 홍합탕집도 얼마 뒤 폐업했다. 비혼주의자가 되어버린 어르신 두 분과 로맨스보단 꿈을 좇고 있는 또 다른 어르신 두 분들의 잠정적 연애 사업 종료 때문이리라. 필자는 언제쯤 다시 이들의 장인어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정가람기자 garamj@sedaily.com
**위치: 2호선 서울대역입구역 2번 출구로 나와 약 200m 정도 쭉 걸어간 후 큰 골목으로 들어가면 위치. 서울특별시 관악구 낙성대동 1604-1
**가격: 홍합 오리지널(moules) 13,900원, 도피네식 감자그라탕 10,500원, 지중해식 오징어튀김 11,500원 등(2인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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