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고위관료인 A씨는 요즘 심경이 착잡하다. 퇴임한 선배 관료의 정책공약 아이디어나 경제현황 분석자료를 달라는 요청을 거절하기 힘들어서다. 민원을 넣는 퇴임관료들은 대부분 특정 대통령선거 주자의 캠프에 공식·비공식적으로 합류한 이들이다. A씨는 “올해는 조기 대선 가능성 때문인지 예전 대선 때보다 OB(old boy·선배)들의 자료 민원이 더 심하다”며 “과거 인물들이 현재의 행정부에서 아이디어를 받아 공약을 짜는 식이라면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기존 정부와 뭐가 달라지겠느냐”며 혀를 찼다.
대선주자들은 이구동성으로 4차 산업혁명의 선봉장임을 자처하지만 정책을 만드는 캠프 구성원은 구시대 인물들이다.
여야 대선주자들이 최근 선거진용 구축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지만 자칫 이전 정부와 차별화되지 않은 ‘그 나물에 그 밥’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국내외 정책환경과 여건은 요동치는데 주요 선거캠프들의 면면을 보면 옛 인물, 과거 정책이 되풀이될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각 대선주자 캠프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면면을 보면 4년 전 대선 때와 70~80%가량 겹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다양한 전문가를 영입해 대규모 선거조직을 꾸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도 이 같은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의 정책자문단을 보면 국민의정부나 참여정부 시절의 각료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경우도 참여정부 시절의 관료나 친노계 인사 중심으로 진용을 갖추고 있다.
여권 주자인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캠프에는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당내 경선주자였던 박근혜 대통령 측 캠프에 합류했던 인물들이 포착되기도 한다.
그나마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는 캠프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측이다. 민간과학기술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비교적 새로운 인물들이 수혈됐다. 다만 참신한 인물들을 보완할 국정경험이나 정치적 경륜을 갖춘 인사들의 보강이 필요하다고 정치권은 보고 있다. 이진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객원교수는 “다당제 체제인데도 대선주자들이 국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며 “구태의연한 틀을 벗고 차별화된 캠프 운영과 정책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능현·김지영·박호현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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