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흑인 여성이 겪어야 했던 차별은 뿌리가 깊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히든 피겨스’는 유색인종 차별이 엄격했던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에서 우주선을 띄우는 데 주요 역할을 했던 흑인 여성들의 활약상을 경쾌한 템포로 그려냈다.
영화는 세 흑인 여성의 출근길로 시작한다. 수학천재 캐서린(타라지 P. 헨슨), 엔지니어 재능이 있지만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엔지니어가 될 수 없는 메리 잭슨(자넬 모네), 전산실의 주임 역할을 하지만 흑인 여성이기 때문에 주임이 될 수 없는 도로시(옥타비아 스펜서)는 카풀로 출근하다 자동차 엔진 고장으로 길에 멈추게 된다. 그 곳을 지나던 백인 경찰은 이들을 의혹의 눈으로 쳐다보며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데, 이들이 나사 사원증을 내밀자 갑자기 친절한 태도로 표변한다. 흑인 여성들이 버스에서 ‘유색인 전용석’에 앉아야 했던 시절, 이렇게 직접 운전해서 나사로 출근하고 백인 경찰의 호의까지 받는 이 장면은 ‘주체적인 삶’을 갈구하는 이들의 자아를 상징하는 듯하다.
이들 중 캐서린은 나사의 차별적 대우에 억눌렸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마침내 얻는다. 우주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 그러나 설렘도 잠시 뿐, 그녀에게는 잡무만이 맡겨진다. 상사는 캐서린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근무 시간 중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다고 타박하기 일쑤다.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사무실에서 800미터나 떨어진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이용해야만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사는 알지도 못한다.
그래도 캐서린의 상사는 양식은 있는 백인 남성이었다. 그는 나사에서조차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이 존재한다는 부당한 사실에 분개하고 “나사에는 유색인 전용은 없다”며 화장실 표지판을 부숴 버리며 ‘차별 철폐’의 통쾌한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는 프렌드십 7호의 발사 지점과 궤적 등을 계산하는 막중한 임무가 맡겨지고, 임무는 완벽하게 수행된다.
이처럼 이 영화는 미국과 소련이 우주개발 전쟁을 벌이던 1961년 프렌드십 7호를 성공시키고, 이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숨겨진 인물들(Hidden Figures)’을 역사의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그러므로 ‘히든 피겨스’는 위대한 ‘흑인 여성’만을 위한 작품이 아닌, 역사에서 숨겨졌지만 ‘위대했던 인물’들을 위한 헌사라 할 수 있다.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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