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쯤에 우리나라에 등장한 신조어가 있다. 바로 ‘몰링(malling)’이다. 복합쇼핑몰에서 쇼핑과 동시에 엔터테인먼트와 외식·여가활동 등을 모두 한곳에서 즐기는 소비형태를 말한다. 몰링은 파급 신조어도 만들어 내고 있다. 몰링을 즐기는 사람을 ‘몰링족(族)’으로 부른다. 몰링하는 소비자들은 ‘몰고어(mall-goer)’, 쇼핑과 함께 영화·카페 등을 이용하는 젊은 여성들은 ‘몰리(mallie)’라고 칭한다. 여기에 몰 곳곳을 둘러보는 것을 운동 삼아 즐기는 사람들을 ‘몰워커(mall walker)’라고 표현한다.
복합쇼핑몰은 부동산의 가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몰(mall)과 역세권’을 합친 ‘몰세권’이라는 신조어가 그것. 복합쇼핑몰 주변에 위치한 주택과 땅이 쇼핑몰에 의해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실제 경기도 고양시 삼송과 하남시 등 복합쇼핑몰이 들어선 지역의 주택 값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월등히 높게 형성돼 있다.
어떻게 보면 복합쇼핑몰은 그냥 ‘큰 쇼핑’ 건물에 불과할 뿐인데 이런 신조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자 입장에서 몰링은 이제 소비형태를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됐기 때문이다. 복합쇼핑몰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다. 이곳에서 친구들과 만나 물건도 사고 영화도 보고 커피도 마시는 그런 공간이다. 주말은 가족의 공간이기도 하다. 가족들과 함께 쇼핑몰에 들러 아점을 먹고, 몰워커를 즐긴다. 그런 다음 쇼핑도 하고 저녁까지 해결하며 하루를 보내는 그런 곳이다.
몰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쇼핑몰이 발달한 미국과 싱가포르는 더더욱 그렇다. 싱가포르 여행을 ‘몰링 투어’라고 할 정도다. 몰링이 관광 수입 증대에도 한몫을 하는 셈이다.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쇼핑몰이 하나둘 형성되는 지역에서도 몰링 현상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런 문화의 힘이 몰링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셈이다.
세계 곳곳에서 몰링은 하나의 문화가 돼가고 있는데 우리나라 한편에서는 이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신세계그룹이 부천과 광주·부산 등에서 건립하려는 복합쇼핑몰 프로젝트의 경우 반대로 홍역을 앓고 있다. 롯데가 서울시 상암동에 추진 중인 복합쇼핑몰은 수년째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은 한술 더 뜨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복합쇼핑몰 등 유통 관련 규제 법안은 20여종이 넘는다. 법안마다 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의무 휴업 일수 및 대상을 늘리고 복합쇼핑몰 건립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 골자이다.
이 같은 반(反) 복합쇼핑몰 흐름은 골목상권 및 소상공인 보호, 그리고 교통난 등에 근거하고 있다. 복합쇼핑몰이 들어설 경우 교통난이 가중될뿐더러 주변 상권이 무너져 소상공인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 아울러 복합쇼핑몰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균형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논리가 핵심이다.
문제는 이 같은 주장에서 소비자는 제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복합쇼핑몰 건립 반대의 경우 지역 시민단체와 소상공인 등 특정 단체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정치권은 이들의 표를 의식해 규제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몰링 문화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배제되고 있는 셈이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서 몰링을 즐기기를 원하는데 정치권과 일부 계층은 이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이미 복합쇼핑몰을 규제한다고 해서 전통시장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소상공인 및 전통시장 보호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지만 유통산업 규제가 정답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복합쇼핑몰을 활성화시켜 유동인구를 늘리고, 이 유동인구를 주변 상권에까지 유도하는 그런 정책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몰링을 즐기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먼 외곽으로 나가는 수요자들을 잡는 것이 지역 상권 부흥에도 더욱 효과적이다./ljb@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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