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사업자(ISP)가 특정 사업자가 제공하는 콘텐츠 속도를 빠르거나 느리게 하는 식의 차별을 금지하는 ‘망 중립성’이 이번 대선에서 또 하나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모두 망 중립성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제로레이팅’에 대한 입장이 차이를 보이는 탓이다. 제로레이팅이란 콘텐츠 사업자가 통신사와 제휴해 이용자 대신 데이터 요금을 부담하는 서비스다. 망중립성의 근간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와 이용자 혜택을 위한 것일 뿐 망중립성과는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 맞붙는 상황이다.
13일 정치권에 따르면 문 후보 측은 제로레이팅 허용 여부와 관련해 입장을 정하지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안정상 더민주 미방위 수석전문위원은 “제로레이팅이 좋은 점도 많긴 한데 자칫 잘못하면 망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재정이 넉넉한 콘텐츠 업체는 데이터 이용료를 본인이 부담하면 되지만 재정이 어려운 업체는 그렇지 못해 하나의 진입 장벽이 생길 수 있으며 이용자 차별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통 3사 모두 콘텐츠 관련 자회사를 보유한 만큼 이들 자회사 서비스 이용자에게 제로레이팅을 제공할 경우 이통사의 시장 지배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안 후보 측은 제로레이팅을 시장 자율에 맡겨 활성화 해야 하다는 입장이다. 망중립성과 제로레이팅은 별개의 문제이며 소비자 편익 증대에 따른 이익이 훨씬 크다는 것. 최근 SK텔레콤(017670)이 증강현실(AR) 기반 게임 ‘포켓몬고’를 제로레이팅으로 쓸 수 있게 해 호응을 얻은 것이 대표 사례다. 안 후보 측 관계자는 “망중립성은 고수하되 제로레이팅은 시장 자율에 맡길 것”이라며 “제로레이팅이 활성화 되면 다양한 마케팅 및 서비스가 가능해져 소비자들에게도 크게 이익이 된다”고 밝혔다. 안 후보측은 제로레이팅 활성화가 네트워크 투자 확대 등으로 이어져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두 후보측 공약에 대해 업계의 의견도 엇갈린다. 이통사들은 환호하는 모습이다. 이통사 매출이 수년 째 정체된 상황에서 콘텐츠 사업자에게 별도의 요금을 징수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지난달 스페인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돈은 통신사가 투자하고 과실은 콘텐츠 제공업체가 가져간다는 불만이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 회의에서 자주 나왔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반면 스타트업을 비롯한 콘텐츠 제공 업체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통사와 제휴 가능한 대형 사업자 외에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제로레이팅을 통한 통신비 부담이 결국 콘텐츠 가격에 포함돼 전체적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 출신인 안 후보가 제로레이팅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답답함을 느낀다”며 “콘텐츠 사업자의 이통사 종속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망중립성이란 원칙을 지키겠다는 원론적 입장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전기통신사업자간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ㆍ제한 부과의 부당한 행위 세부기준‘을 마련해 오는 7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다만 해당 시행령은 ’전체 이용자의 편익이나 후생증대가 큰 경우‘나 ’신규서비스 출시를 위한 불가피한 조건‘ 등의 사유가 있을 때는 이를 허용해줘 제로레이팅 이슈가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제로레이팅 허용 여부에 따른 입장 차이
허용시 | 불허시 | |
장점 | 특정 콘텐츠 이용 소비자 편익 증대, 통신망 구축 확대 유인 발생 | 낮은 진입장벽으로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 활성화 |
단점 | 전반적인 콘텐츠 비용 증가, 이통사로의 ICT 시장지배력 쏠림 강화 | 다양한 콘텐츠 출시 맟 마케팅 제한, 심해지는 망 과부하 |
혜택 사업자 | 이통사, 일부 대형 콘텐츠 업체 | 스타트업, 게임 등의 대부분 콘텐츠 업체 |
자료:업계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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