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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부족한 볼리비아 '라 파스' (3)

볼리비아 라 파스에 물을 공급하는 빙하. 이 빙하가 사라져 가자 라 파스 시민들은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리고 물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물통을 준비하고 기다려라. : 현지인들이 시에서 급수를 해 주는 시각을 맞추려면 일도 나가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물 저장 탱크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라미레즈와의 만남이 끝난 후, 현지인 가이드인 파올라가 한 때 차칼타야 빙하가 있던 곳으로 갔다. 이곳에 자리잡은 스키 리조트의 고도는 5,216m. 수목 한계선보다 훨씬 위다. 빙하가 사라진 지금, 이 곳은 불모의 풍경으로 변해 버렸다. 버려진 스키 로지와 리프트의 낡은 윈치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현재 41세인 파올라는 그녀가 어릴 때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이 곳을 방문했을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현재 이 곳은 돌들이 널브러진 황량한 풍경이지만 한 때 이 곳에서 추위에 몸을 웅크리며 눈싸움을 했을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려 했다. 몽상을 방해한 것은 어느 등산가의 인사 소리였다. 덥기 때문에 그는 상반신에 티셔츠 한 장만 입고 있었다. 파올라는 근처에 있는 해발 5,700m의 와이나 포토시 산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산의 모습이 변한 것에 놀랐다. 눈더미에서 거대한 회색 화강암 능선이 돌출되어 있었다. 그녀는 라미레즈의 예상조차 너무나 낙관적이라고 예측했다.

볼리비아의 수자원 역사에는 영욕이 공존한다. 지난 1990년대 라 파스를 포함한 볼리비아의 여러 도시들은 수도를 민영화했다. 미국과 프랑스의 대기업들이 수도의 효율과 규모를 늘려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분명 바라는 대로 되기는 했지만 요금은 급상승했다. 그리고 시민들은 반발했다. 결국 볼리비아는 이들 외국 기업을 추방하고 말았다. 그리고 2009년에 볼리비아가 채택한 신헌법에서는 물을 기본 인권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에보 모랄레스가 이끄는 볼리비아 정부는 전 세계에 수자원의 수호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진실은 훨씬 복잡하고 지저분했다. 라 파스를 양분하는 어느 강은 하수와 공업 폐수로 오염되어 가뭄에도 사람들이 물을 길러 오지 않을 정도다. 라 파스에 있던 프랑스 수도 회사를 대신해 생긴 국영 수도회사 ESPAS는 너무나도 무능했다. 2013년의 감사에서는 이 회사가 수도관 누수 때문에 수백만 달러의 잠재 수익을 놓쳤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 회사와는 별도로 도시의 인프라도 과히 좋지 못했다. 어떤 감사에 따르면 이 도시의 수돗물 중 45%가 결함 있는 수도관 때문에 새어나간다고 한다. 새로운 수도관을 도입하고 더욱 엄격한 감시 체계를 도입한다면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인간의 실수가 도저히 용납이 안 될 지경까지 자연의 회복력을 소리 없이 갉아먹는 것이야말로 기후 변화의 지독한 측면이다. 라 파스는 현재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시의 지도자들은 아직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물 장군의 사령부 벽에는 화이트보드들이 잔뜩 걸려 있었다. 그는 큰 방 한 칸으로 이루어진 이 사령부에서 작전 기획 및 계획을 했다. 여기에서 그는 휘하에 있는 113대의 <시스테르나>의 진행 상황과 현 위치를 파악한다. 그는 일을 매우 효율적으로 해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는 물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 비하면 현재는 물 공급 요청이 크게 줄어들었음을 자랑한다. 상황은 개선된 것 같다. 사람들은 물을 공급받고 있다. 그러나 도시의 수도관에 물을 공급해주는 수원에서 물을 퍼서 사람들에게 공급해준다는 그의 정책이 페드로의 돈을 훔쳐서 파블로에게 월급을 주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질문에 그는 어깨를 으쓱이다가 물 소비 속도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남은 물의 양을 묻자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아직도 10일은 더 버틸 수 있다. 그리고 곧 비가 올 것이다.“

건조한 날이 이틀 더 이어진 후, 물 장군과 수자원부 장관은 여러 대의 4륜구동차를 이 \끌고 산 속으로 들어갔다. 기자들에게 새 건설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 중에 한 곳은 인근의 시냇물을 초당 200리터 속도로 옮겨주는 파이프라인이었다. 그러나 그 시냇물은 현지 농부들의 수원이었다. 그 농부들의 논밭이 마르면 그들 역시 라 파스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라 파스의 물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우리는 이 차량 대열을 떠나 흙과 돌 투성이의 길 위로 45분을 더 움직여, 모레이라가 알려준 대형 댐과 저수지 건설 현장에 갔다. 이전 댐의 바로 상류에 있었는데, 하룻밤 새에 건설 현장을 차린 듯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모레이라는 설명했다. “이 댐은 1월 중순이면 가동될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그 약속을 지킬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어차피 상관 없었다. 그 전날 저녁, 수자원부의 댐의 기술 유닛 조정관인 오스카 미브가 그 문제를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새 저수지는 옛 저수지보다 더 많은 물을 저장할 수 있지만 새 저수지를 채우려면 두 번의 우기가 지나가야 한다. 그리고 미브는 기술자지 정치가가 아니었기에 현 상황을 보면 두 번의 우기가 지나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번 우기 첫 달의 강수량은 평년에 비해 무려 40%가 줄었기 때문이었다.

라 파스의 시민들은 천천히 진행되는 재난에 처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상황에 적응 하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 홍보 전문가인 43세의 카테리네 산체스 로페즈는 부촌에 위치한 2층짜리 자택에 앉아 있었다. 캐비넷과 계단통 맨 아래에는 산타 클로스 인형이 있었다. 분명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른 상황에서였다면, 이 집은 매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가지각색의 양동이와 냄비들이 카운터, 의자 사이, 화장실을 메우고 있었다. 이 집에 사는 일곱 식구는 이 용기들에 담긴물로 용변, 요리, 스폰지 목욕 등을 하고 있었다.

시각은 오후 1시였다. 물 위기가 시작되기 전, 로페즈는 도심의 사무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제는 집에서 수도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 때 물을 받아야 빨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바닥에는 빨래가 더미로 쌓여 있었다. 시 당국은 오전 9시면 물이 나온다고 발표했지만 이미 5시간이 다 되도록 물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로페즈는 수도꼭지를 점검하고, 쓸데없이 돌려 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로페즈는 “모든 것이 너무나도 달라져 버렸다.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기다리는 데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화려한 빨간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그런 복장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경고를 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물을 좀 더 조심해서 사용했을 텐데. 이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 / BY LESLIE KAUFMAN, PHOTOGRAPHS BY CHRISTINA HOL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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