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달러 규모의 전자책 시장이 디지털 자가출판 급성장에 기여하는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자가출판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생각해보라. 과거 수십 년 동안 자가출판은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한 작가들이 의존하는 절박한 피난처 정도로 치부되어 왔다. 유명 작가를 꿈꾸는 이들은 쾨쾨한 자비(自費) 출판 전문 출판사에 비용을 지급해왔다. 그러면 출판사들은 그들의 언어를 충실히 활자로 옮겨 ‘작가’들이 친구들에게 나눠줄 책 몇 박스를 뚝딱 찍어냈다.
하지만 요즘엔 전자책과 자가출판이 아마존 덕분에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일부러 이런 독자적인 경로를 선택하는 작가들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뿐만 아니라 ‘마션 The Martian’처럼 영화화 되는 등 다른 영역으로도 그 인기가 확대되고 있다. 지금 전자책 자가출판은 10억 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해 있다.
하지만 요즘 자가출판에선 ‘자가’의 비중이 훨씬 적다. 여러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 독립작가를 돕는 부가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편집, 마케팅, 디자인, 유통, 홍보 등 출판 단계별로, 혹은 전 단계를 맡아서 진행해 주는 기업도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자가출판의 모순적인 절차들을 담당하는 다양한 디지털작업들도 등장했다. 현재는 디지털 출판사, ‘하이브리드’형 출판사, 보조형 자가 출판사, 심지어 직접 출판을 해주는 에이전시도 있다.
이 모두는 ‘킨들 효과(Kindle effect)’라 부를 수 있다. 지난 2007년 첫 전자책 리더기를 출시한 아마존은 킨들 다이렉트 퍼블리싱 Kindle Direct Publishing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 분야에 물꼬를 텄다. 누구나 자신이 쓴 전자책을 무료로 업로드하고, 출판하고, 판매까지 할 수 있는 서비스였다. 제프 베저스 Jeff Bezos의 회사가 지난해 발간한 전자책 400만 권 가운데 40%가 자가출판이었다. 판매 추이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오서어닝즈 닷컴AuthorEarnings.com은 23억 달러에 달하는 아마존의 전자책 관련 매출 중 자가출판이 약 25%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존이 꾸준히 전자책 시장 점유율 80%를 유지하자, 라이벌 기업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애플 아이북 iBook과 구글 플레이Google Play도 자가출판 작가들을 홍보하고 있다. 180여 개국에서 책을 판매하는 캐나다업체 코보Kobo도 최근 전문 에디터와 북커버 디자이너를 고용하는 등 작가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반스 앤드 노블 Barnes & Noble도 작년 여름 자가출판 작가들을 위한 주문형 출판 서비스를 시작했다.
독립작가가 되면 창작 재량권이 넓어지고, 인세도 훨씬 많이 받게 된다. 보통 매출의 50~70%를 챙길 수 있다. 전통적인 출판 방식에서 보장되는 15~25% 인세에 비해 상당히 큰 금액이다. 소위 ‘독립도서’라 불리는 출판물이 베스트셀러 1위를 점령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되는 경우도 있어 작가들이 큰 돈을 벌고 있다. 코보의 CEO 마이클 탬블린 Michael Tamblyn은 “인디 작가들이 전자책 매출의 20%를 이끌고 있다”며 “기존 작가들의 책보다 더 잘 팔린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공급업자들도 모여들고 있다. 리지닷컴 Reedsy.com이라 불리는 새로운 플랫폼이 한가지 예이다. 리지닷컴은 작가들이 500명에 달하는 전문 프리랜서 에디터와 북 커버 디자이너의 이력서를 검색할 수 있게 해주고, 제안서와 입찰, 비용관리, 관계자들의 후기와 평가등급 등을 관리해주는 대신 계약 건당 10%를 수수료로 받고 있다. CEO 에마누엘 나타프 Emmanuel Nataf는 현재까지 리지닷컴을 통해 출판된 책이 약 1,300권에 달한다고 말했다. 시애틀에 위치한 걸 프라이데이 프로덕션 Girl Friday Productions에선 제작 편집, 디자인, 디지털미디어 전략 서비스를 모두 포함한 패키지 서비스를 1만~3만 달러에 제공하고 있다. 직원 25명을 보유한 이 업체는 지난 10 년 동안 전통적인 출판사 역할만 해왔기 때문에, 이번에 비교적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레슬리 밀러 Leslie Miller 는 “2013년부터 현재까지 1인 작가 서비스 사업의 규모가 매년 2배씩 성장해 왔다”며 “우리는 출판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분야별 특화 서비스로는 마케팅을 들 수 있다. 소셜미디어 사이트 왓패드 Wattpad는 작가가 직접 쓴 챕터를 사이트에 무료로 업로드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팬 층을 넓힐 수 있게 돕고 있다(시리즈 소설 ‘애프터 After’는 왓 패드를 통해 10억 뷰를 달성하기도 했다). 스매시워즈 Smashwords, 리플 북스 Riffle Books, 북버브Bookbub 등도 열혈 독자들의 커뮤니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고, 고정 배송비용 또는 판매의 일부를 떠안는 방식의 광범위한 전자책 유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판타지소설 작가 데이먼 코트니Damon Courtney는 무료로 책을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있던 2015년, 스스로 북 퍼널 Book Funnel을 설립했다.이 업체는 작가들이 공짜 마케팅을 통해 팬 층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북퍼널은 현재 매달 5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있다. 이 서비스의 대가로 연간 20~100달러를 지불하는 인디 작가들이 3,000명에 이르고 있다.
서비스 유형은 작가가 원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 예컨대 당신이 전자책을 출판하고 디지털 저작권을 보유면서도 2차적으로 오프라인 서점에서 종이 책을 판매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고 가정해보자. 최대 서적유통사 인그램 Ingram은 작가들이 자사의 자가출판 도구 스파크 Spark를 통해 서점 3만 9000곳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에버애프터 로맨스 EverAfter Romance도 로맨스 장르에 대해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업체는 1년 만에 수천 권의 로맨스 서적을 보유해 1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에버애프터는 미스터리, 스릴러, 공상과학 장르로 서비스 영역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에버애프터를 소유한 다이버전 퍼블리싱 Diversion Publishing의 CEO 스콧 왁스먼 Scott Waxman은 “작가들의 수요가 엄청나다”고 말했다.
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도 있지만, 수익의 일부를 받는 대가로 지원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하이브리드 형태의 출판사나 자가출판 보조 서비스 등은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일부 업체는 작가들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작품을 디지털 플랫폼에 업로드 해주는 일만 하고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하는 악덕업체들도 있다. 코보의 탬블린은 “구매자의 주의가 요구되는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쉬 라이츠 프레스 She Writes Press 같은 하이브리드 출판사는 신구 방식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 엄선된 원고만을 출판하고 편집 가이드와 유통, 마케팅 등 전통적인 출판 방식의 가치는 그대로 제공한다. 그 대가로 작가에게 5,200달러와 수익의 20~40%를 별도로 부과한다.
심지어 출판 에이전시도 이 산업에 뛰어들었다. 커티스 브라운Curtis Brown, IPSO 북스 IPSO Books, 넬슨 에이전시 Nelson Agency 같은 출판사와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한 경우, 해당 작가가 자가출판을 통해 책을 내도록 돕고 있다. 매출의 일부를 가져가는 대신, 마케팅과 자가 출판을 세부적으로 관리해준다.
웹 시대의 특성을 더해 전통적인 출판사처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영국의 언바운드 Unbound와 캘리포니아의 잉크셰어즈 Inkshares의 경우, 출판 여부를 철저히 독자에게 맡기고 있다.
혼자 힘으로 모두 해냈어!
자가출판 전자책 성공작들 (일부는 후에 전통 출판사로 이동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판매부수
1억 2,500만부 판매. 영화매출: 1억 6,610만 달러
마션 판매부수
2,300만부 판매. 영화매출: 2억 2,840만 달러
스틸 앨리스 판매부수
260만부 판매. 영화매출: 1,870만 달러
디파처 판매부수
100만부 판매. 영화매출: 없음(진행 중)
웨이워드 파인즈 판매부수
100만부 판매. 폭스사 TV 시리즈로 각색됨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JENNIFER ALS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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