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이 지난 2014년 도입된 통일대박 예·적금 상품을 잇따라 폐지하고 있다. 이 상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통일대박 발언 이후 은행이 앞다퉈 선보인 것인데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전 정부 흔적 지우기 차원에서 상품 자체를 슬그머니 없애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는 ‘녹색금융’ 상품을 쏟아내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일시에 거둬들였던 것처럼 통일 관련 금융상품도 반짝했다가 결국 폐기 처분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시중은행의 정부 눈치 보기가 너무 지나치다는 지적과 함께 외풍에 취약한 거버넌스를 극복하지 않으면 매 정부 때마다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IBK기업은행(024110)은 통일금융상품인 ‘IBK통일대박기원통장’을 2년 3개월 만인 이달 22일 판매를 중단했다. 이 상품은 통일 관련 기업에 최대 0.5%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제공하고 이자 일부를 통일 관련 단체에 기부하는 상품으로 총 3,038억원(5,346좌)의 판매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수요가 더 이상 늘지 않고 계좌 유지가 어렵다는 이유로 판매가 중단됐다. 지난해 10월에는 NH농협은행이 ‘NH통일대박 정기예금·적금’ 판매를 중단했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000030)도 유사한 상품을 판매하고는 있으나 적극적인 판매에 나서지 않아 실적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등 사실상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통일 관련 금융상품은 대부분 이자와 수익금 일부를 통일기금 조성에 자동으로 기부하는 상품으로 2015년 초까지만 해도 출시 1년여 만에 전체 판매액 1조원을 달성할 정도로 주목 받았지만 정권교체와 함께 흐지부지되고 있다.
국책은행은 단순 상품 출시에서 그치지 않고 관련 연구회를 만드는 등 더 적극적 행보를 보였다. 산업은행은 2014년 통일금융을 주도하는 금융기관으로 발돋움하고자 통일금융 협의체를 발족했고 기업은행은 통일준비위원회를, 수출입은행은 남북한 경제 통합을 연구하기 위한 북한개발연구센터를 구축했다. 이덕훈 전 수출입은행장의 경우 박 전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 1주년을 기념해 독일에 출장을 만들어 다녀올 정도로 통일금융에 관심을 보였지만 현재는 이런 분위기 자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의 비전으로 내놓자 당시에도 금융권이 42개의 녹색금융 상품을 쏟아냈지만 자취를 감췄던 것과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진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사전에 고객들의 수요와 실효성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검토 없이 정부 코드에 맞추는 데만 급급해 상품을 개발하고 내놓다 보니 은행들이 관련 상품 설계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쏟고 있다”며 “현재도 은행권의 공통 관심사는 새 정부 정책에 맞는 금융상품을 누가 빨리 출시하느냐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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