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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실패를 허하라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조선 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은 한국사는 물론 세계 과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자격루와 혼천의를 만든 그는 오늘날까지 가장 존경받는 위인으로 손꼽힌다. 동래현 관노에서 종3품까지 오른 장영실이지만 이후의 행적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장영실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의외로 처벌에 관한 것이다. 새로 만든 세종의 가마가 시험 운행 중 부서지자 장영실이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세종실록’에는 장영실이 곤장 80대를 맞고 파면됐다고 기록돼 있다. 그 후의 행적도 찾아볼 수 없다. 충남 아산에 있는 묘조차도 가묘(假墓)라고 한다.

장영실이 태어난 해로부터 600년을 지나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는 실패를 허(許)하지 않는 분위기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는 국가의 발전과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 혁신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이뤄지는데 시도 자체를 원천봉쇄한 셈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가 연구개발(R&D) 성공률은 96%라고 한다. 얼핏 좋게 들릴 수 있지만 실상은 매우 좋지 않은 신호다. 정작 사업화 성공률은 20%에 그쳐 70%에 근접한 미국·영국과 비교했을 때 턱도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연구 가치나 사업화 가능성에 대한 고민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고 안전한 목표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대목이다. 비단 공공 부문뿐 아니라 민간 부문도 실패를 허락하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기업들은 직원에게 도전과 혁신을 요구하지만 정작 직원들은 실패했을 때의 불이익을 걱정한다. 실패했을 때 위험을 고스란히 안기면서 무작정 도전하라고만 하면 혁신을 위한 도전에 나서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은 지금 패스트 팔로어가 아닌 퍼스트 무버로 국제사회와 경쟁해야 한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분야에 남보다 먼저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 위험을 무릅쓴 도전을 존중해야 한다.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실패로 얻은 기술과 경험을 자산화하는 방법에 대한 것까지 가능하다면 더할 나위 없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사업 성공률은 10%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구글·페이스북·테슬라 등 최고의 혁신기업 대부분이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난 것은 실패를 허하는 문화에서 비롯됐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이런 가정을 해본다. 만약 장영실에게 실패를 허락했다면 어땠을까. 부서진 가마가 자동차로 태어나지는 않았을지, 조선형 소총이 개발돼 임진왜란의 고초가 없었을지, 대한민국 땅 위에 혁신의 꽃이 무수히 피어나지는 않았을지 하는 상상 말이다. 역사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앞에 둔 지금 도전하고 또 도전해보자. 실수해도 괜찮다. 실패의 쓴맛은 성공의 확률을 그만큼 더 높여주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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