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차원 뮤지컬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을 원작으로 2차원의 세계를 무대로 옮긴 엔터테인먼트 장르를 통칭한다. 이 말이 일본 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께. 같은 해 일본 2.5차원뮤지컬협회가 설립되면서 더욱 널리 쓰이게 됐다. 요즘 일본 현지 뮤지컬 트렌드를 소개하는 기사에서는 ‘2.5차원 뮤지컬(2.5次元ミュ-ジカル)’이 지금에서야 진정한 전성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2.5차원 뮤지컬의 역사는 196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찍이 만화 산업이 발달한 나라답게 만화의 흥행을 바탕으로 무대화에 나선 사례가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1974년에는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가 뮤지컬로 제작됐고 뮤지컬 ‘소공녀 세라’가 1985년 제작되며 인기를 끌었다.
2000년 이전까지 2.5차원 뮤지컬을 즐기는 관객층이 10대였다면 지금의 전성기를 이끄는 관객층은 20~30대다. 성인들이 즐기는 2.5차원 뮤지컬로 대표적인 작품이 ‘테니스의 왕자’ ‘나루토’ 등이다. 10~20대 시절 즐겨 읽던 만화가 뮤지컬로 제작되면서 만화 팬들이 공연장을 찾기 시작한 것. 이 작품들의 특징을 보면 우선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고 출연 캐릭터가 많다. 각각의 캐릭터는 개성이 뚜렷해 캐릭터별로 고정팬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2.5차원 뮤지컬은 산업적 측면에서도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만화와 영상 판매는 물론 관련 MD상품 제작을 통한 수익 다각화, 패키지 판매까지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5차원 뮤지컬은 최근 국내 공연업계에서도 제작비용을 올리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스타마케팅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주연급 배우 개런티 문제와 이에 따른 양극화 문제는 일본에서도 오랜 논쟁거리였다. 그런데 캐릭터 지명도가 높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 굳이 인지도가 높은 배우를 주역으로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 2.5차원 뮤지컬이 캐릭터를 충실히 재현하는 무명 배우들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원천 콘텐츠 팬을 공연장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만화책이나 2차원의 만화영화를 즐기던 팬들이라도 해당 캐릭터에 대한 애정으로 공연장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반대로 2.5차원 뮤지컬의 성공을 통해 원작이 다시 인기를 얻는 현상도 뚜렷하다. 가령 ‘테니스의 왕자’는 2008년 원작 연재가 끝났지만 2015년 후쿠오카 카나루시티 극장에서 상연된 이후 만화책이나 관련 상품이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나루토’는 2015년 도쿄 시부야에 2.5차원 뮤지컬 전용 극장 ‘아이아 2.5 시어터 도큐’ 오픈을 계기로 이곳에서 장기 상연하고 있고 지난해 11월에는 말레이시아 현지 공연에 나서며 해외에서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일본 공연 업계는 2.5차원 뮤지컬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10대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만화, 애니메이션 마니아층이 20~30대로 확장되면서 이들이 공연장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점은 특히 긍정적이다. 현지 공연전문매체 보도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만 해도 3,500엔 수준이었던 2.5차원 뮤지컬 입장권의 상한선이 구매력을 갖춘 관객층의 유입에 힘입어 8,000엔 이상으로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는 물론 콘텐츠 수출 측면에서도 매력적이다. 도쿄, 오사카 등에 설치된 2.5차원 뮤지컬 전용 극장에는 외국인 관광객용 자막 안경을 대여하며 언어 장벽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또 일본 공연 업계는 ‘나루토’의 말레이시아 공연에 이어 올해도 중국 상하이(뮤지컬 ‘도검난무-막말천랑전’), 한국(‘데스노트’) 등에서 2.5차원 뮤지컬을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일본 현지에서 2.5차원 뮤지컬이 새로운 공연 트렌드이자 고부가가치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국내에서도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중심의 웹툰 시장 성장을 바탕으로 웹툰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일명 ‘웹툰 컬’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올해는 세 작품이 관객들을 찾아온다.
지난 3일 개막한 ‘찌질의 역사’는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등 방송을 통해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김풍 작가가 글을 쓰고 심윤수 작가가 그린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20대에 막 접어든 청춘들의 찌질한 연애담을 적나라하게 그려 20대는 물론 30~40대 사이에서도 인기를 누렸던 작품이다.
2015년 초연 당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웹툰 뮤지컬의 성공 가능성을 입증한 서울예술단의 ‘신과 함께 저승편’도 오는 30일 2년 만에 앙코르 무대를 올린다. ‘신과 함께_저승편’은 인기 웹툰 작가 주호민 작가의 동명 작품을 무대화한 작품인데 죽은 이를 저승으로 이끄는 저승사자와 염라대왕 등 민속 신들의 이야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인기를 끌었다. 뮤지컬 무대에서는 김다현·박영수(진기한), 김도빈(김자홍), 송용진(강림)등이 원작 캐릭터와 흡사한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배우로 꼽히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학로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위대한 캣츠비’ 역시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강도하의 웹툰 ‘위대한 캣츠비’는 여자친구 ‘페르수’에게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은 무능력한 남자 캣츠비와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선’, 청춘들의 비극과 고뇌의 출발점인 ‘하운두’ 등을 중심으로 20대의 고뇌, 사랑에 대한 미련을 그린 작품이다.
원작을 통해 검증된 이야기의 힘, 다양한 소재, 독자층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웹툰 컬은 국내 뮤지컬 시장의 주요 장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포털 중심 웹툰에서 레진코믹스 등 다양한 웹툰 플랫폼의 등장으로 독자층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연령대와 취향을 반영한 작품들이 원천 소스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공연 업계 역시 이 같은 원소스 멀티유즈 전략의 차원에서 다양한 부가가치 공연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뮤지컬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학교 교수는 “2.5차원 뮤지컬을 통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일본의 사례는 한류의 위기를 고민하는 국내 콘텐츠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국내에도 캐릭터와 드라마 등에서 강점을 가진 웹툰이나 애니메이션을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다음 차원의 한류를 고민할 때”라고 지적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