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찾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강남 재건축의 상징과 같은 이 아파트 상가에는 10여개의 공인중개 사무실이 밀집해 있다. 평소 같으면 투자자들의 전화를 받거나 방문객들을 맞으며 분주했을 시간이지만 이날 사무실의 대부분은 불이 꺼진 채 비어 있었다. 또는 커튼으로 사무실 안을 가리거나 현관문 앞 ‘부재중’이라는 안내문을 붙여뒀다. 하지만 혹시 찾을 손님을 위해서였는지 자신들의 연락처가 적힌 명함은 문앞에 걸어뒀다. 최근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을 시작으로 집값 과열 양상이 번져나가자 이상 급등 지역을 중심으로 정부가 지방자치단체 등과 함께 분양권 불법거래와 같은 투기행위 단속에 나선다고 하자 벌어진 풍경이다.
은마아파트는 현재 지자체에서 재건축 사업시행인가도 받지 못한 상태다. 즉, 불법 분양권 거래와는 사정이 먼 곳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혹시나 뭐라도 하나 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휴업을 하게 됐다는 게 공인중개사들의 말이다. 한 공인중개사는 “노무현 정부 때도 이랬다”면서 “과열 논란이 벌어지면 정부가 여기(강남권)를 들쑤시는데 그러면 작은 행정지도라도 받게 된다. 나중에 굉장히 피곤해질 수밖에 없어 문을 닫은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구 개포동의 ‘개포주공1단지’도 상황은 매한가지였다. 관리처분총회를 앞둔 개포1단지는 최근 한 달 동안 호가가 1억원가량 올라 시장과열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곳이다. 이에 정부의 단속 소식이 들리자 개포1단지 상가에 들어선 10여개의 중개업소 대부분이 휴업에 들어갔다. 중개업소가 텅 비었던 탓에 아파트 상가에 적막감이 들 정도였다. 일부 중개업소에서는 불을 끄고 문을 잠근 뒤 그 안에서 상담을 하거나 손님을 맞는 모습도 보였다. C공인중개사는 “중개사들끼리 문을 닫자고 의견을 모은 것은 아니다”라면서 “손님이 오면 단속이 있다는 사정을 알려야 할 것 같아 일단 불을 꺼두고 앉아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같이 정부 단속 방침에 중개업소들이 휴업으로 맞서자 단속에 실효성이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일부에서는 나온다. 밀행이 담보돼야 하는 단속 전에 대대적으로 그 사실을 알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의 한 관계자는 “불법 행위를 적발하는 차원도 있지만 현장의 온도가 어느 정도인지 점검하는 차원도 있었다”면서 “이번 단속이 특정 기간을 정해두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시장을 점검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들 지역의 중개업소들은 일주일 정도 상황을 지켜본 뒤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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