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물량의 10%에 불과한 프리미엄 제품이 전체 수익의 30~40%를 차지합니다. 프리미엄 TV 1대를 파는 게 저가 TV 10대를 파는 것보다 비용과 수익 면에서 나을 정도입니다. 프리미엄 제품 판매가 부진하면 연쇄적으로 하위 라인업의 가격까지 낮춰야 해서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고 프리미엄 시장과 중저가 시장 사이에 끼어 수익성은 더욱 악화됩니다.”(전자업계 A사 관계자)
여름철 가전 성수기를 맞아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의 ‘가전전쟁’이 심상치 않다. 치열하게 맞붙는 지점은 단연 ‘프리미엄 시장’이다. 매년 양사의 기술력을 총동원한 신제품을 선보여왔지만 올해는 특히 ‘가격·기술·아이디어’ 그 어느 것 하나 밀릴 수 없다는 처절함과 집요함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는 최근 프리미엄 가전의 가격이 웬만한 ‘소형차’ 1대 값에 맞먹을 정도로 치솟으면서 제품 하나하나가 회사를 대표하는 얼굴로 자리매김한 영향이 크다. 여기에 인공지능(AI)까지 가세하면서 가전사업이 양사 첨단 기술의 전쟁터가 됐다.
증권업계의 관계자는 “LG전자가 프리미엄 마케팅에 성공하면서 매출액에서는 비교조차 어려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추월할 정도”라며 “삼성전자도 이 같은 상황에 위기의식을 느끼며 시장점유율을 유지함과 동시에 초고가 마케팅에 주력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가격’에서 차별화된 전략으로 VIP를 공략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LG 시그니처’라는 별도 브랜드를 둔 LG전자와 달리 제품군별로 최고급 사양에 ‘셰프컬렉션’ ‘QLED TV’ 등의 이름을 달아 초고가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업계 최초로 냉장고에 도자기 소재를 적용한 최상위 모델 ‘셰프컬렉션 포슬린’을 1,499만원에 내놓았다. 바로 아래 모델인 ‘셰프컬렉션 패밀리 허브’보다 400만원가량 비싼 것으로 VVIP만을 위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자신감으로 읽힌다.
LG전자는 ‘초(超) 프리미엄’이라는 신조어를 단 ‘LG 시그니처’로 전 세계 부호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해외 고급 백화점이나 호텔 등을 주 타깃으로 삼아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가치를 강조한다. 오는 8월 LG 시그니처의 중동 시장 출시를 앞두고는 두바이 최고급 호텔의 로열스위트룸을 빌려 LG 시그니처 전 제품으로 채웠다. 1대에 3,300만원인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W’ 77인치형을 비롯해 일반 모델보다 두 배 이상 비싼 냉장고·세탁기 등을 한꺼번에 선보였다.
수십년 가전 노하우를 자부하는 기술력과 아이디어 싸움도 치열하다. LG전자가 상단 드럼세탁기와 하단 전자동세탁기를 결합한 ‘트윈워시’로 대박을 치자 삼성전자는 위아래가 반대이고 문이 세 개인 ‘플렉스워시’를 내놓았다. LG전자의 경우 세탁기 진동과 소음 문제를 해결한 기술력을 자랑하며 탈수 중인 세탁기 위에 카드를 쌓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삼성전자는 미처 넣지 못한 빨래를 작은 앞문에 넣는 편리함 등을 어필하고 있다. 여름 성수기를 맞은 에어컨 역시 인기몰이 중인 삼성전자의 ‘무풍 에어컨’에 맞서 LG전자는 대류의 원리로 찬바람을 직접 맞지 않고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LG 휘센 듀얼 에어컨’을 내놓았다.
이 같은 살벌한 경쟁은 점차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한 ‘초연결’ 사회를 선점하기 위한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 전쟁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프리미엄 가전이라는 하드웨어를 가정 곳곳에 채우고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투입해 집안의 가전을 말 한마디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시대를 열겠다는 게 양사 모두의 구상이다. 삼성전자는 자사 인공지능(AI) 비서 ‘빅스비’를 냉장고에 탑재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 가전에 빅스비를 적용할 계획이다. LG전자는 구글 등과의 협업을 바탕으로 삼성전자에 대항할 동맹을 형성하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양사의 명운을 건 가전 전쟁이 격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신희철기자 hcsh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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