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올 하반기부터 공공부문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고 민간에도 권고 의사를 밝히고 있는 가운데 보수적인 의료계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을 시작하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나 눈길을 끌고 있다.
고려대학교의료원은 병원으로서는 최초로 의료 인력 선발에 블라인드 면접 방식을 도입, 내달 660여 명의 간호사를 채용할 때부터 전면 실시하겠다고 27일 밝혔다.
병원 측은 “1차 서류 전형은 그대로 진행하지만 2차부터는 지원자의 학력이나 경력, 심지어 이름조차 알 수 없도록 사전 정보를 완전히 차단한 채 오로지 실력과 인성에 초점을 맞춰 인력을 선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병원은 심도 있는 면접을 통한 성공적인 채용을 목표로 면접 시간은 2배로 늘리는 동시에 면접 조별 인원은 축소했다. 또 각 병원 간호부장과 간호팀장을 면접 위원으로 배치함으로써 실무 능력을 상세히 검증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김효명 고려대의료원 의무부총장은 “한발 앞선 의료기관으로 성장하려면 직무 능력이 중심이 되는 인사문화가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 같은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논의했다”며 “환자와 접점이 높아 실력과 따뜻한 마음이 가장 중요한 간호사 직군을 시작으로 다른 직종으로까지 블라인드 면접 방식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라인드 면접은 일반 기업에서는 꽤 보편화 된 채용 방식 중 하나로 꼽히지만 고도의 전문성과 직무능력이 필요한 의료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반대로 학력사항 등이 채용의 중대한 변수로 꼽히는 일이 잦았다. 한 대학교에서 대학병원과 함께 보건·간호·의과대학 등을 운영할 경우 같은 학교 출신 지원자가 병원 채용에서도 이득을 보는 경향이 높았던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간호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많지만, 서울의 대형병원에는 여전히 쏠림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블라인드 면접 방식을 통해 그동안 손해를 봤던 타 대학 출신의 우수 간호사들이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의사 등 환자 안전과 직결된 직군으로까지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확대하는 것은 다소 위험할 수 있다는 이견도 나온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자칫 실수가 있을 경우 환자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의사·간호사의 실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면 그 사람이 어떤 공부를 해왔고 누구와 어디서 경험을 쌓았는지까지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의사의 경우 수련 기간 동안의 경험, 성실도 등이 중대한 평가요소가 되는데 이런 부분을 모두 배제한 채 블라인드 면접을 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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