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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산사나무





영국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 글래스턴베리에는 예로부터 기적의 산사나무에 얽힌 전설이 전해져 온다. 예수의 제자 요셉이 가브리엘 대천사의 명령대로 교회를 세우고 웨어리올 언덕에 지팡이를 꽂았더니 땅에 뿌리가 내리면서 산사나무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 나무는 신기하게도 해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어김없이 꽃을 피워 왕에게 귀한 선물로 보내지기도 했다.

산사나무는 일찍이 성경에 등장하는 아론의 지팡이처럼 신비한 힘을 가진 존재로 여겨져 왔다. 산사나무의 가시가 귀신으로부터 집을 지켜주고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상징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산사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아이들의 침실에 나뭇가지를 갖다 놓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신랑 신부가 산사나무 가지를 든 들러리를 따라 입장을 하고 산사나무로 만든 횃불 사이로 퇴장을 하기도 했다. 일설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썼던 가시면류관도 산사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장미과의 낙엽활엽수인 산사나무는 햇빛을 좋아해 야산의 능선이나 숲 가장자리의 양지바른 곳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전국의 산지에 골고루 서식하는 나무다. 해마다 5월이면 순백색의 꽃이 눈송이처럼 몽실몽실 피어나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고 가을에는 나무를 뒤덮을 정도로 빨간 열매가 많이 열려 결실의 계절을 실감하게 만든다. 우리 조상들도 산사나무가 소화나 혈액 순환에 좋다며 왕실에서 사용할 정도로 귀한 약재로 대접받아 왔다. 동의보감에는 ‘산사나무가 식적을 삭히고 오랜 체기를 풀어주며 기가 몰린 것을 잘 돌아가게 한다’고 적혀 있다. 배가 아플 때 차로 끓여 마시던 상비약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미국 방문길에 올랐던 문재인 대통령이 버지니아주의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산사나무 한 그루를 기념 식수했다. 문 대통령은 산사나무가 ‘겨울의 왕(Winter King)’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며 6·25전쟁 당시 매서운 혹한을 이겨낸 장진호 참전용사들의 투혼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강조했다. 온갖 잡귀를 쫓는다는 산사나무가 피로 맺어진 한미 동맹을 든든히 지켜주기를 기대한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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