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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에 신음하는 물류 - <상> 30년 묵은 규제에 묶인 주류 운송] “주류 배송차 1대에 업체 1곳 제품만 실어라” … 트럭 절반도 못채웠는 데 발차

빈차·중복 운송으로 年 600억 길바닥에

1980년대 탈세 막으려던 장치

30년째 개정 없어 업계 아우성

“전자세금 계산서”로 투명화 가능

공동 배송 허용해도 문제 없어



4차 산업혁명에 맞춰 물류업계 역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가로 막는 낡은 규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다. 실제로 물류 현장에서는 30년 전의 낡은 제도가 아직도 시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류산업 발전을 막는 제도가 무엇인지 짚어본다.



#주류 운송회사에서 일하는 화물 기사 A 씨는 강원도 홍천 소재 주류 공장에서 출고되는 맥주를 대전 소재 도매상까지 옮기는 일을 한다. 공장에서 출고되는 양이 적으면 3.5톤 트럭의 절반 밖에 싣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인근 지역의 다른 공장에 가서 나머지 공간에 물건을 싣고 싶지만 규제 때문에 그럴 수 없다. 차량 한 대당 주류업체(제조·도매업자) 1곳의 제품만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주·맥주 등 주류를 공장에서 도매상, 다시 소매상으로 운송할 때 차량 1대당 1개사의 제품만 옮겨야 하는 낡은 규제가 물류 업계를 옥죄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 차량에 여러 회사의 주류를 실을 수 없다 보니 길 위에 흘리는 물류비 손실만 연간 600억원 수준이라고 추산한다.





◇ 차량 1대당 1개 주류 제품만 = 이 규제는 지난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 주세법 시행령 46조 2항은 주류제조자, 주류수입업자 또는 종합주류도매업자 및 주류중개업자는 제품을 실은 차량에 국세청장이 정하는 바에 따라 주류 운반용 차량임을 표시하여 운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주세사무처리규정 82조는 주류의 제조자 또는 도매업자(중개·수입업자 포함)가 주류를 판매하는 경우 관할 지방 국세청장이 발급한 검인스티커를 붙인 차량으로 운송하도록 했다. 스티커에는 업체명이 들어가는데, A사의 검인스티커가 붙은 차량에는 다른 업체의 제품을 실을 수 없다.

이 같은 규제는 주류 판매를 둘러싸고 탈세가 횡행하던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여러 업체의 주류를 차량 한 대에 함께 실어 나를 경우 차량 내부에 적재된 술의 출처가 뒤섞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주류를 거래할 때 현금으로 결제한 뒤 세금계산서를 주고받지 않음으로써 매입·매출액을 드러내지 않아 세금을 포탈할 수 있는 무자료거래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 한마디로 주류 시장의 질서를 유지하려면 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었다.



◇ 세금포탈 우려 해결 가능, 공동배송 허용해야 = 이 같은 규제 때문에 손실은 제법 크다. 업계에서는 연간 3,000억원으로 추정되는 국내 주류 물류비 중 20%인 600억 원이 규제에 따른 공차 운송과 중복되는 동선에 따라 낭비되고 있다고 본다. 2,500원짜리 캔맥주 500㎖ 2,400만 개가 길 위에서 새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법령을 개정해 차량 1대당 여러 주류 업체 제품을 공동적재 및 배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가장 걱정하는 세금 포탈 우려는 전자세금계산서 발급 시스템을 통해 투명성을 제고하면 된다. 이미 무선인식(RFID) 기술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국세청에 주류 운송 내역을 전송할 수 있으며, 화물운송시스템(TMS)으로 주류 배송 관련 내역을 데이터화해 관리할 수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관계자는 “과거에 만든 규정 때문에 현재 중소 주류 운송업체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국가적 물류비를 감소함과 동시에 소비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조속히 관련 규정이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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