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책에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긴축 움직임과 맞물려 ‘빚내서 집 사는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1,400조원에 이르는 가계 부채가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가계 파산 위험이 커지자 다주택자와 투기 세력의 돈줄을 말리기 위해 전방위 공세에 나섰다. 집값 상승은 젊은 층의 주거 불안, 결혼 및 출산 기피를 불러오는 등 사회적 문제로도 등장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한국은행이 올해 안으로 6년만에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대출자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는 동시에 부동산 시장이 더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6일 해외경제포커스에 게재된 ‘글로벌 부채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2.8%로 중장기적으로 성장을 제약할 수 있는 과다한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전 세계 연구기관에 따라 레버리지(빚으로 투자하는 것) 과잉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이 가계부채는 GDP 대비 75∼85%, 기업부채는 80∼90%, 정부부채는 85∼90%(신흥국은 50% 내외)로 대략 추정된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와 함께 스위스(128.4%), 호주(123.1%), 노르웨이(101.6%), 캐나다(101.0%), 스웨덴(85.7%) 등을 가계부채 임계치 상회국가로 꼽았다. 막대한 가계 부채가 우리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등장한 가운데 연준이 9월이나 10월쯤 금리를 인상할 경우 가계 대출자들이 충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연준이 지난 6월 기준금리를 1.00~1.25%로 올리면서 한국의 기준금리(1.25%)와 거의 같아지게 됐다. 연준이 금리를 추가 인상하면 한국과 미국간의 금리 역전이 발생하면서 한국은행은 외국인 자금 이탈 등을 우려해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주요국들의 유동성 파티가 끝나간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전인데도 이미 시중 실세금리가 상승 중이다. 은행들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의 상승에 따라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일제히 인상하고 있으며 일부 은행의 경우 5%에 육박하고 있다. 2014년 7월 최경환 경제팀의 부동산 부양책, 사실상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을 믿고 집을 샀던 실수요자들의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막대한 가계 부채와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각종 사회·경제적 부작용이 커지자 3년만에 정책을 급선회 중이다. 정부는 지난 2일 보유세 강화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정책수단을 총동원한 ‘8·2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투기에 대한 선전포고에 해당하는 이번 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의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은 40%까지 낮아져 대출받을 수 있는 한도가 줄어든다.
또 금융당국은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뿐 아니라 조정대상지역을 비롯해 전국 모든 지역에서 다주택자의 돈줄을 죄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조정대상지역과 수도권에서 주택담보대출을 1건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는 추가로 대출을 받을 때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10%포인트씩 강화하기로 했다. 그 이외 전국 모든 지역에서도 LTV 규제가 기존보다 10%포인트 낮추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이런 내용으로 은행 등 각 금융기관에 보내는 LTV·DTI 규제 세부 시행방안 행정지도를 변경했다고 6일 밝혔다.
정부가 8·2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후 당국은 물론 시중은행도 다주택자에 대한 돈줄 조이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6일 KB국민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이 있는 고객이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의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할 경우 기존 주택을 2년 이내에 처분하는 조건(특약)으로 승인하라고 각 지점에 지침을 내렸다고 6일 밝혔다. 국민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산 고객이 추가로 서울이나 과천 등의 지역에서 아파트를 사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면 기존 집을 2년 이내에 팔아야 하는 셈이다.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등도 주택담보대출이 있는 고객이 투기지역에 아파트 담보대출을 추가로 신청하는 경우 2년 안에 기존 주택을 처분한다는 특약을 넣도록 했다. 투기과열지구를 제외한 것은 차이가 있지만 국민은행과 마찬가지로 주택 매도를 조건으로 걸어 다주택자에 대한 자금 공급을 제한하는 셈이다. /정가람기자 gara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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