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36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 사태’는 병·의원 멸균시설의 취약성이 주요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멸균장비는 구축 비용에 비해 당장 효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지만 국가적인 방역 시스템을 구축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입니다.”
공간 멸균장비 전문기업 태왕사이언스의 배찬원(사진) 대표는 “살균이 적정 수준의 세균과 바이러스를 없애는 것이라면 멸균은 원천적으로 감염의 우려를 차단하는 기술”이라며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멸균 시스템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대표는 지난 2007년 글로벌 의료기기의 한국지사장을 맡아 의료기기 시장에 첫 발을 내딛었다. 글로벌 본사의 장비를 국내로 들여와 주요 병·의원과 제약사, 실험실 등에 공급하며 국내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서는 등 사업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러던 중 2012년 태왕사이언스를 설립하고 멸균장비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매년 조류 독감과 구제역 등으로 일선 농가가 막대한 피해를 입는 것을 보고 고민이 커졌습니다. 효율적인 멸균 시스템만 구축하면 예방이 가능한데 해마다 재앙이 되풀이된다는 게 안타까웠죠.”
처음 창업에 나선 만큼 자금과 기술, 노하우 모두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숱한 시행착오 끝에 올해 초 이동형 멸균장비 ‘가디온’(Guardion)을 개발했다. 영어로 수호자를 의미하는 ‘가디언’(Guardian)과 과산화수소 ‘이온’(Ion)에서 제품명을 따왔다.
공간 멸균은 통상 수술실과 병실 등에 독성이 강한 과산화수소를 분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각종 벽지와 장판, 침대 등 집기류에 손상을 가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멸균을 완료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글로벌 시장은 영국 바이오쿠엘이 독점하고 있는데, 35도 농도의 과산화수소를 고온으로 끓인 뒤 고압으로 분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하지만 과산화수소 이온이 효율적으로 분사되지 않고 멸균 공간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게 단점이었다.
‘가디온’은 과산화수소를 끓이지 않고 7도 농도로 마른 안개처럼 분사하는 ‘드라이 포그’(dry fog) 방식을 채택한 멸균장비다. 공간의 가로와 세로 크기만 입력한 뒤 리모컨을 누르면 자동으로 멸균이 완료된다. 초미립자로 과산화수소를 분사하기 때문에 구석 공간에 생기는 결로 현상을 원천적으로 방지해주고 멸균 시간도 훨씬 적게 걸린다.
초미립자가 멸균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시설물의 손상이 없다는 점도 경쟁력이다. 이미 2015년 특허청에서 특허를 받았고 미국·중국·인도에서도 3개의 국제 특허를 출원했다. 최근에는 시스템 에어컨처럼 병실과 수술실의 천장에 매립할 수 있는 ‘가디온 B’와 멸균장비와 환기 장비를 동시에 탑재한 ‘가디언 H1S’까지 개발했다. 글로벌 브랜드의 절반 수준으로 가격 경쟁력도 갖췄다. 국내 공간 멸균 시장은 100억원에 불과하지만, 세계 시장은 2조원에 이른다.
배 대표는 “이미 국내 주요 대형병원에 ‘가디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상대적으로 병원 위생이 좋지 않은 중국 시장 진출도 앞두고 있다”며 “앞으로 병·의원뿐만 아니라 산후조리원과 노인요양원에 이어 식당과 가정으로까지 판로를 넓혀 글로벌 1위 멸균장비 전문기업으로 도약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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